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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아 Nov 28. 2023

2023 베르나르베르베르를 다시 만나다.

깨어나는 세포

늦은 오후 우리 가족은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바로 반가운 손님이 오기 때문이다.

아들은 이모를 만날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며 신나는 모습을 보인다.    

 

처제는 서울에 산다.

처제네는 결혼 3년 차 푸릇푸릇 싱그러운 신혼부부이다.

서울 사는 도시여자답게 한 손에 책을 들고 역에서 바삐 빠져나오는 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우리 가족은 처제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장모님이 계신 곳으로 출발을 했다.

차 안에서 처제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기차에서 책을 읽으려고 가져왔는데 너무 무거워서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형부 책 좋아하지? 이 책 읽을래 형부?     


나는 뒤늦게 무언가 모으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신발장에 나이키 운동화가 쌓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작은 책장에 책들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나는 신발과 책이 늘어나는 재미로 중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나에게 공짜 책이라니 내 귀는 쫑긋하며 반응을 보이는 듯했다.    

 

"물론 좋지! 무슨 책인데?"     


처제는 뒷자리에서 팔을 뻗어 어깨너머로 나에게 책을 건네어주었다.  

   

'꿀벌의 예언 1'

작가 베르나르베르베르.     



'베르나르베르베르'라는 글씨를 보자마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친근한 민머리에 안경 쓴 천재 작가를 다시 만나게 되니 설레는 마음이었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3이었다.

나는 수시 1차로 대학을 합격한 행운아였다.  

무려 7월부터 학교에는 출석도장을 찍기 위해 등교를 했다.    

 

"야 수시 1차 합격한 애들은 수능 보는 애들 방해 안 되게 잠을 자든 책을 보든 조용히 있어!"     


선생님의 친절한 호통으로 난 고민 끝에 잠보다 책을 선택했다.

책이라고는 친형이 읽던 ‘동방불패’와 ‘슬램덩크’

그리고 나만의 명작 만화책 소마신화전기였다.

     

이런 나에게 '개미'라는 책이 다가왔다.

놀랍게도 독서와 거리가 멀었던 나는 '개미'를 시작으로 '나무'까지, 나에게 책이 주는 즐거움을 알게 해 준 작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개미’라는 책을 왜 읽게 되었는지 어디서 나타났는지 도무지 기억해 낼 수 없다.

그저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작가를 알게 된 책이라는 것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이 상상은 나도 해봤는데!'

    

하며 신기해하면서도 부러웠다.

상상을 글로 남기는 실천의 능력이 말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도 난 책을 읽고 있지만,

상상과 거리가 먼 책들을 읽고 있다.      


책장에는 자기 계발서가 가득하고 내가 찾는 책들도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지?

또는 나라는 사람을 다듬는 방법을 요구하는 책들로 책장을 채우고 있었다.

그나마 자기 전 꼬박꼬박 읽어주는 동화책이 내가 아직 상상할 수 있는 희망을 주고는 했다.    

  

'소설'


오랜만이었다.

커가면서 나는 스스로 상상력을 차단하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 하는 상상이라고는 로또 1등 당첨되어서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산하는 흐뭇한 상상.

부모님께는 얼마를 주고 이사는 어떤 아파트로 가는 그런 달콤한 상상말이다.

또는 출근하기 싫은 아침.

제발 어디선가 미사일이 날아와서 전쟁이라도 나면 좋겠다는 상상이었다.

그렇게 내 뇌는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처제는 떠났고 내손에는 책 한 권이 남겨졌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옛 추억을 넘기는 것 같았다.

죽어버린 내 동심과 상상의 뇌세포들이 하나씩 깨어나는 거 같았다.  

    

나는 민머리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질감 없이 다가올 나이가 되었다.

나도 민머리를 걱정할 나이가 되어 보니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굉장히 동안이었고,

한결같은 외모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부럽기만 하다.



특히 마음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동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젊어지는 묘약을 마신 것처럼 젊어지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대신 내 마음은 젊어질 것이라 믿고 싶다.


그렇게 난 2005년 떠나보내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2023년 다시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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