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극이 시작됐다

-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by 정희리


“엄마, 혼자서 나 키우느라 힘들었지?”

“그랬겠지?”

“뭐가 가장 힘들었어?”

“글쎄... 잘 기억이 안 나네?”

“그럼 뭐가 기억 나는데?”

“음... 엄마가 더 잘해주지 못했던 기억. 그래서 늘 미안하고 그래.”


엄마 때문에 힘들다고 투덜거리다가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먼 훗날 내 곁을 떠난 엄마를 떠올렸을 때 미안한 감정만 기억에 남게 되면 어쩌나.



이모들 말에 의하면 우리 엄마는 어릴 적부터 약골이었다고 한다.

늦둥이로 워낙 약하게 태어난대다가 엄마 젖을 많이 못 먹고 자란 탓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늘 골골댔다.

잔병치레는 물론이요, 큰 병 또한 많았다.

따라다니며 엄마 병간호를 하다 보니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집 엄마들은 딸 집에 가서 청소도 해주고, 맛있는 반찬도 듬뿍 만들어주고, 김장도 해주고 그러던데 난 왜 거꾸로 엄마한테 해다 바쳐야 하는 거지?

자식에게 의지하려는 엄마가 야속했고, 늘 불만이었다.

게다가 이런 큰 병까지 걸려버렸으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왜, 어찌하여 우리 모녀에게 이토록 큰 시련을 주시나이까.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엄마는 처음부터 약골은 아니었다.

어린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체면이고 뭐고 다 집어던진 채 보따리 장사까지 감행한 강인한 엄마였다.

통닭집을 하다가 기름을 뒤집어 써서 얼굴에 흉측한 화상을 입었을지언정 결코 장사를 접지 않았던 불굴의 여성이었으며, 종아리가 퉁퉁 부어 인대가 끊어질 정도로 뛰어다니며 음식을 나르던 분식집 여사장님이셨다.

난 그런 엄마의 희생을 먹고 자랐다.


엄마는 돈 버느라 바빴고, 철부지였던 난 놀기 바빴다.

엄마에 대한 고마운 마음 따위는 없었다.

자식을 위한 엄마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믿었으니까.

난 그렇게 엄마의 등골을 빼먹으며 자랐다.


엄마 덕에 걱정 없이 살아온 내가 이제와 엄마를 향한 희생이 버겁다며 투덜거린다.

늙고 병든 엄마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억울하다며 하소연한다.

엄마의 고마움도 모르고 자란 주제에 나같은 딸 있으면 나와 보라며 생색 내기 일쑤다.

참으로 치사하고 비겁한 딸이 아닐 수 없다.


아직 본격적인 싸움은 시작도 안 했는데,

지레 겁 먹고 뒷걸음질 치는 내 모습이 한심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희생은 당연하지만,
부모를 향한 자식의 희생은 당연한 게 아니다.


부모를 봉양하는 건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는 말이 왠지 씁쓸하게 다가왔다.

엄마는 내게 있어 선택하고 말고 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세상에 남은 혈육이라고는 오직 엄마 밖에 없다. 그렇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살려야 한다.

그것 말고는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엄마를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게 도무지 용납 되질 않았다.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아직은 아니다.

엄마를 살리고자 하는 내 마음이 비록 엄마가 아닌 나의 얄팍한 이기심 때문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내 인생에 엄마가 없는 건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앞으로는 철부지 딸로 남고 싶었던 나의 욕망을 내려놓으려 한다.

투덜이에 지레 겁먹고 뒷걸음치는 쫄보와도 결별이다.


엄마가 청춘을 다 바쳐 나를 돌봐온 것처럼 이젠 내가 엄마를 돌봐드려야 한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이렇게 해야 나중에 후회가 덜하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에 엄마의 보호자를 자처했을 뿐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아니,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기 위해.


나의 이런 결심을 희생이나 효도라는 말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냥 사랑이다.

엄마를 사랑하니까.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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