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by 정희리


“엄마 손 닦았어?”

“어.”

“손 세정제도 발라.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수시로.”

“알았으니 잔소리 그만해.”

“세균 감염 조심해야 된다잖아. 아무 거나 좀 만지지 마. 다 세균 덩어리야. 답답해도 마스크 절대 벗지 말고. 외출해서 돌아오면 옷도 바로 갈아입고...”

“아유~ 귀 따가워. 네가 엄마 해라!”




보호자들은 환자를 돌보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세균과의 전쟁이라고 한다.

그만큼 백혈병 환자들은 감염에 취약하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백혈병 환자들을 가리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백혈병 환자들은 까만 옷을 입고 깜깜한 고속도로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

쌩쌩 달리는 차들이 언제 엄마를 덮쳐도 하나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다.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공기 중에 떠도는 세균까지 막을 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세균 속으로 엄마를 던져 놓을 수도 없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마음 같아서는 엄마를 당장 무균실에 입원시키고 싶지만, 무균실에 입원하기 위해서는 조건과 절차가 까다롭다.

설사 조건이 맞다 해도 병실 부족으로 무균실 입원은 하늘의 별따기.

현실이 이렇다 보니 엄마 집을 무균실처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고, 개인위생에 철저하도록 잔소리에 잔소리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옛날 사람이라 위생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다.

땅바닥에 떨어진 것도 아무렇지 않게 주워 먹던 시절이 몸에 베인 탓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 세균과의 전쟁을 선포해야만 했다.


먼저 청소를 위해 집 안을 싹 다 뒤집을 필요가 있었다.

고백하건대 난 집안 살림과는 거리가 먼 성향의 소유자다.

청소도 일주일에 한 번 할까 말까에, 설거지는 모아놨다가 한꺼번에 해야 제맛이오, 먼지는 집 안을 지키는 가택신이라 생각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게으름뱅이다.

그러던 내가 집안을 뒤집으며 청소하는 모습에 엄마는 놀라워했다.

그만큼 난 절박했고, 그 마음이 엄마에게 전달되어 엄마가 삶을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소파와 침대를 옮겨가며 청소를 끝내고 나면 냉장고 정리가 기다리고 있다.

알뜰한 엄마가 차곡차곡 모아둔 냉동실 떡이며 식재료들을 싹 다 버리고 살균제로 냉장고 안을 소독했다.

엄마는 옆에서 아깝다며 난리를 쳤지만, 음식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가는 세균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화장실 변기뿐 아니라 형광등 스위치나 리모컨 등 엄마 손에 닿는 건 매일매일 소독이 필수다.

밖에서 세균이 유입될 수 있으니 창문 여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공기청정기를 구입했고, 설거지한 식기가 자연 건조되면서 세균이 번식할 수 있다는 말에 작은 살균기도 마련했다.

식기나 수저는 엄마가 사용하는 것과 내가 사용하는 것을 철저히 구분했고, 반찬도 내 침이 섞일까 봐 엄마가 드실 건 따로 담아 드려야 했다.

남들이 보면 유난 떤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백혈병 환자에게 있어 세균 감염은 생명과 직결해 있기에 도저히 대충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게 엄마를 살리는 길이라 믿었기에.


하지만 지금 생각하건대 엄마가 참 외로웠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손님 방문도 최대한 자제하라는 의사 말에 엄마는 친구들도 만날 수조차 없었다.

가끔 성당 친구들이 기도해주신다고 오시곤 했는데 마스크를 벗을 수 없어 차 한 잔도 제대로 대접할 수 없었다.

세균 감염도 감염이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더 예민하게 굴었는지도 모른다.


의사는 화분과 애완동물도 키워선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자식같이 키우던 강아지는 우리 집으로 보내졌다.

화분이 문제였다.

엄마의 유일한 취미 생활은 화분 가꾸기였다. 한 마디로 화분이 많다는 말씀.

그 많은 화분을 감당하기에 우리 집은 좁았고, 남편이나 나나 화초까지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주변에 나눔을 해야 했다.

수년간 정성껏 키운 화분을 떠나보낼 때마다 엄마의 한숨이 늘어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균 감염이 될 만한 요소는 최대한 제거했고, 엄마도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단 하나 엄마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게 있었으니, 바로 산책이다.

만날 친구도 없고, 돌볼 강아지도 없고, 가꿀 화초도 없으니 얼마나 적적할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의사가 외출도 삼가는 게 좋다고 했기에 고민스러웠다.

환우 카페에 어떤 보호자 딸이 나 같은 고민을 올린 적이 있다.

엄마가 산책을 너무 가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이다.

혈액 수치가 정상으로 올라올 때까지 외출은 삼가는 게 좋다는 댓글이 대다수였다.


난 가만히 엄마의 주름진 얼굴을 쳐다봤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로 화두가 바뀐 지 오래다.

다른 말 같지만 결국 같은 뜻이고, 같은 뜻 같지만 다른 뜻을 품고 있는 이 단어가 내 삶의 기초가 되어버렸다.

다시 말해 내 지론은,


‘후회 없이 살자.’


살면서 어찌 후회 없이 살 수 있겠는가.

당시에 옳다고 생각한 행동도 시간이 지나면 후회로 남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기에 후회 없이 산다는 건 말이 안 되는 명제다.

하지만 후회 없이 살기 위해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후회라는 건 미래에 깨닫게 되는 과거형이다. 즉, 현재에는 알 수 없다.

내가 이 일을 두고 후회를 하게 될지, 안 하게 될지.


잘 모르겠을 땐 마음이 시키는 대로, 지금의 행복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나아가기.


텅 빈 집, 좁은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 엄마를 보니 답이 나왔다.

고민 없이 마스크와 장갑을 챙겨 들었다.


“엄마~ 나가자.”

“의사가 산책 안 된다며?”

“산책 말고 운동. 의사가 운동하랬잖아. 나가서 운동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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