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오늘은 몇 번이나 찔렀어?”
“다섯 번.”
“울 엄마 많이 아팠겠다.”
“응. 신경질 났어.”
“그러게. 그놈의 혈관은 왜 자꾸 숨는대?”
“주사가 무서운가 보지. 엄마처럼.”
보통 암환자는 입원해서 항암제를 맞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엄마는 저강도 항암제라 통원으로 맞아도 된다는 처방이 나왔다.
한 달 패턴으로 5일 동안 연달아 5번의 항암제를 맞아야 한다고 한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우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병원으로 출근 도장을 찍으러 간다.
항암제는 1시간짜리 꼬마병이다.
주사액 다 들어가는 시간은 1시간밖에 안 되지만, 외래 접수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결코 만만치 않다.
대학 병원답게 환자수가 어마어마한 탓이다.
대기 의자가 부족해 서 있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그러다 보니 주사를 맞기 위해선 기본 3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나같이 건강한 사람이야 상관없지만 기운 없는 엄마를 보니 이런 병원 시스템에 화가 났다.
병 고치러 갔다가 병 걸려 드러누울 판이다.
기나긴 대기 시간이 끝나면 주사실로 들어갈 자격이 주어진다.
주사실 안에는 여러 개의 병실이 있는데, 병상이 부족한 관계로 1시간짜리 항암은 의자에 앉아서 주사를 맞는다. 근데 그곳은 보호자가 따라 들어갈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비좁은 병실 환경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 자꾸 나가라며 쫓아낸다.
모른 척 엄마 따라 들어갔다가 쫓겨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도 엄마 주사 다 맞을 때까지 옆에서 벌 서고 있을 생각 없다.
내가 악착같이 따라가려고 하는 이유는 엄마의 보이지 않는 혈관이 걱정되어서다.
노인들은 어린애들처럼 혈관이 얇아서 찾기 쉽지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 엄마처럼 수술 경험이 많은 환자는 혈관이 더 얇아진 탓에 찾는데 애를 먹곤 한다.
노련한 베테랑 간호사들도 한참만에 찾거나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해서 찔러대기 일쑤다.
내가 악착같이 엄마 주사실까지 따라가려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간호사가 한 번 실수하면 희한하게도 끝내 혈관을 찾지 못하고 계속 엄한 곳을 찔러대다가 결국 다른 간호사가 와서 혈관을 찾는다는 걸 경험상 깨달은 탓이다.
한 번은 실수할 수 있다. 두 번도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세 번 이상 찌르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혈관을 찾는답시고 계속 찌르는 간호사도 괴롭겠지만 찔림을 당해야 하는 환자는 더 괴롭고 공포스럽다.
역시나 이번에도 엄마의 혈관은 숨어버렸고, 간호사는 세 번이나 혈관을 찾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정맥팀을 불러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나의 요청은 단칼에 거절당했다.
주사실에선 정맥팀을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왜죠?
주사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이미 베테랑이기 때문에 정맥팀에 연락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헐...
근데 왜 몇 번이고 계속 찌르는 거죠? 정맥팀은 한 번에 잘 찾던데.
말도 안 되는 그들의 궤변에 엄마는 무차별 찔림을 계속해서 당해야만 했다.
가뜩이나 아픈 환자한테 너무 가혹한 징벌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엄마는 늘 그랬듯 묵묵히 참으셨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우리 엄마는 유독하다.
'그냥 내가 참고 말지...'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그렇기에 간호사가 혈관을 찾겠다며 마구잡이로 찔러대도 마냥 참고 계시는 거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주사에 대한 공포가 생기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주사 맞을 생각만 하면 겁부터 나고, 그런 이유로 병원 자체에 대한 거부감까지 더해졌다.
엄마는 병원 가자고 하면 주사 맞을 생각에 한숨부터 내쉰다.
혈관 못 찾을 텐데...
단순히 주사 맞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아이처럼 주사를 무서워하게 된 것이다.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나 어릴 적에는 학교에서 단체로 예방 주사를 맞곤 했었다.
쫄보였던 난 주사 맞는 게 무서워 선생님이 집으로 보낸 안내장을 감췄고, 단체 예방 주사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들통이 나버렸고, 결국 엄마 손에 이끌려 일반 병원에서 예방 주사를 맞아야 했다.
팔에 바늘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겁부터 집어 먹고 그 자리에서 울었던 기억, 그런 날 보며 어이없게 웃던 간호사 언니의 표정,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내 손을 잡아주던 엄마의 모습이 앨범 속 사진처럼 펼쳐졌다.
엄마는 학교에서 저렴하게 맞을 수 있는 주사를 비싸게 맞았다며 투덜거렸지만, 주사 맞느라 고생(?)한 날 위해 시장에서 순댓국을 사주셨다.
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내겐 시장에서 파는 순댓국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 역할이 뒤 바뀌어 버렸다.
주사를 무서워하던 딸은 어른이 되었고, 딸의 손을 꼭 잡아주던 엄마는 주사를 무서워하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골수 검사 전날 엄마를 모시고 킹크랩을 먹을 갔다.
비싸다는 이유로 한 번도 못 먹어봤다며 엄마는 신이 난 아이처럼 좋아했다.
앞으로 자주 사드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난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백혈병은 워낙 까다로워서 제한하는 음식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갑각류다.
이젠 사드리고 싶어도 사드릴 수가 없게 되었으니, 난 평생의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평소 꽃게라도 자주 사드릴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