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나 진짜 백혈병이래?”
“엄마, 너무 걱정 마. 다행히 수술은 없대.”
“그럼 뭐 어떻게 하래?”
“그냥 약 먹고, 항암 하고...”
“항암? 그걸 또 하라고?”
“지난번 때랑 달라. 이번엔 아주 약한 약으로 할 거래.”
“항암 안 한다고 해.”
“머리도 안 빠지고, 울렁거리지도 않는대. 진짜로!”
“안 한다고 했다.”
“누구 맘대로! 해야 돼. 무조건!”
오래전, 백혈병은 TV 드라마 단골 소재였다.
백혈병에 걸린 비운의 여주인공과 그녀를 향한 한 남자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에 울고 웃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창백한 얼굴로 툭하면 쓰러지는 여주인공의 가냘픈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걸 보고 자란 철부지 소녀들은 체육이나 조회 시간에 빈혈로 쓰러져보는 게 소원이라며 까르르 웃으며 떠들어댔다.
어깨가 쩍 벌어진 체육 선생님이나 키 크고 잘생긴 학생 회장의 등에 업혀 양호실로 가는 로맨틱한 상상은 필수였다.
하지만 현실 속에 그런 남자 주인공은 없듯 세상에 낭만적인 병은 없다.
그저 백혈병을 앓고 있는 TV 속 여주인공이 아름다웠을 뿐,
백혈병에 걸리면 아프고 고통스럽고 서글프다.
우리 엄마는 왜 하필 그런 병에 걸린 걸까.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비운의 여주인공을 하기에 우리 엄마는 너무 늙어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충분히 비운의 주인공으로 살아왔다.
이제 남은 여생, 편안하게 즐길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무시무시한 병마가 교통사고처럼 엄마의 인생을 덮쳐버리다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혈액내과 첫 외래 날.
인상 좋은 의사 선생님이 백혈병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줬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백혈병을 처음 진단했던 내분비내과 의사가 부디 돌팔이이길, 혈액검사 기계 고장으로 수치가 잘못 나왔기를,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다 꿈이기를.
제발... 어서 이 악몽에서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하지만 의사는 현실 속 의사답게 덤덤히 앞으로의 치료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혈액암은 완치율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통계적 확률일 뿐이다.
백혈병 환자 중 젊은 연령이 많기에 완치 확률이 높게 나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엄마는 75세가 넘은 고령이기 때문에 ‘다코젠’이라는 저강도 항암약을 사용한다고 한다.
항암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엄마가 거부감을 표현했다.
10년 전 이미 유방암 때문에 항암 치료를 경험했던 기억 때문이다.
유방암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마친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다신 항암 안 한다고.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해는 가지만 지금 상황에선 다른 치료 방법이 없다.
고령이라 조혈모세포 이식도 할 수 없고, 체력이 버텨주질 않으니 공격적인 항암 치료도 할 수 없다.
약효가 더딘 저강도 항암제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병명 앞에 ‘급성’이라는 단어가 붙어서였을까?
치료는 급속도로 이뤄졌다.
골수 검사하고 3일 후 바로 항암 치료가 시작됐다.
당뇨 때문에 동네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백혈병이라는 걸 알게 되고, 대학 병원 예약해서 진료받고,
혈액 검사와 골수 검사받고 항암 처방이 떨어지기까지. 불과 1주일 동안 벌어진 일이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고 머리도 멍했다.
이성은 얼음처럼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지만 영혼은 연기처럼 몽롱하게 흩어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 상태도 이런데 당사자인 엄마는 얼마나 허망할까.
슬쩍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무표정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도통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감정 표현이 서툴렀던 엄마다.
난 그게 늘 불만이었다.
좋다 싫다 표현을 하질 않으니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며 투덜거리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문득,
일희일비하지 않는 엄마의 성격이 너무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나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울고 불고 난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혈액 검사가 잘못됐을 거라며 병을 부정했다가,
왜 하필 내가 이런 몹쓸 병에 걸렸냐며 분노했다가,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며 타협했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 우울해하다가,
결국 모든 걸 수용하며 받아들였겠지.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5단계의 정서적 반응이 있다고 말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박사의 이론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부정도 하지 않으셨고, 분노도 없었으며, 그 어떤 타협이나 우울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내색도 하지 않으시니 도무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또다시 화장실로 달려갔다. 하마터면 엄마 앞에서 울 뻔했다.
진단 이후 내 안의 수도꼭지가 고장이 나버린 탓에 잠시라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으니 큰일이다.
나는 가슴 깊이 심호흡을 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던 영혼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정신을 단단하게 붙잡아야 할 때다.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 머릿속은 오직 하나,
엄마를 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강해져야 한다.
난 엄마의 보호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