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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정말 오긴 오나?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1952)

by Heart M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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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 극은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로 처음 접했었다. 정말 흥미로워서 아직도 몇 장면은 떠오를 정도이다. 생각보다 재밌어서 부조리 극의 대표작인 <고도를 기다리며>를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그러다 잊고 살고 있었는데 얼마나 신구, 박근형 배우님들의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을 한다는 것을 보고 다시 내 마음속에서도 떠오름! 그래서 이번에 도서관에서 빌려 와서 만나게 되었다.



이 작품은 2막으로 되어있고 대부분의 시간을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의 대화로 채워져 있다.

둘의 대화는 굉장히 단조롭다. 신발 벗느라 낑낑거리는데 벗고 나선 딱히 할게 없음. 배고파서 주머니에 있는 당근을 꺼내 먹고 별 의미 없는 말들이 오간다. 그러다 누군가 가자고 하면 상대가 고도를 기다려야한다고 하고 맞다 하면서 그냥 그 자리에 있다. 의자를 폈다 접었다 옮겼다 침을 뱉었다 큰 의미없는 단조로운 행동들이 나열되듯이 나타난다.



그러다 포조와 럭키가 등장하는데 럭키 목엔 끈이 매여있고 포조는 럭키의 노예같은 느낌으로 등장한다. 모든 짐을 럭키 혼자 들고 무언가 더 들어야하면 입으로 물기까지 한다. 포조와 럭키에 대해 디디와 고고는 궁금해 해서 이것저것 묻지만 포조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방금전에 말했던것들도 기억을 잘 못한다. 기억을 잘 못하는건 사실 디디, 고고도 마찬가지이다. 포조와 럭키가 퇴장하고 소년이 와서 고도는 오늘 오지 않고 내일 올꺼라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서 2막이 시작된다. 2막도 1막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디디와 고고가 먼저 등장하고 큰 의미 없는 대화와 서로 모자를 바꿔쓰기 같은 행동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포조와 럭키가 등장했는데 오늘의 포조는 눈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오늘도 역시 별로 의미 없는 행동들과 말을 하고 포조와 럭키가 퇴장한 후 소년이 와서 오늘은 고도가 못오고 내일은 꼭 올꺼라고 말을 전한다. 고고는 나무를 보고 목을 맬까 싶은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끈이 마땅치 않다는 걸 알고 다음 날엔 튼튼한 끈을 가지고 와서 고도가 오면 그냥 살고 안 오면 목이나 매자고 말한다. 그들은 이제 가자고 말하지면 둘다 움직이지 않고 끝난다.



이런 내용인데 의미 없이 하는 행동들이 푸핫 웃음을 자아낼 만한 것들이 좀 있다. 포조가 다먹어서 버린 뼈다귀를 주어 먹는 고고의 모습도 뜨아 싶고 포조가 넘어져 있어서 자신을 세워달라고 사정하자 디디와 고고가 도와주려고 하나 둘다 넘어져서 못 일어나는 모습도 직접보면 넘 우스울 것 같다 ㅎㅎㅎ

이런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부분이 중간중간 있어서 별 의미없는 말과 행동들의 향연인데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한 때 작품들은 교훈적인 큰 의미를 가져야만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에 내용 자체가 무겁고 작품을 보면서도 그 안의 의미를 찾기위해 노력하면서 봐야했다면 이 작품은 등장 인물의 우스워 보이는 모습을 편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다.



그 다음 날 고도가 정말 올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데 오게 된다고 해도 딱히 고고와 디디에게 어떤 변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ㅋㅋㅋㅋ 그냥 고도 왔냐? 그럼 이제 머하지?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고도가 안 온다면 둘은 정말 튼튼한 끈을 가지고 와서 나무에 목을 맸을까? 고도가 온다는 것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그들을 봤을 때는 그런 얘기 했는지 기억도 못할 확률이 무척 클것 같다 ㅎㅎ 만약 정말 기억해서 끈을 가져와서 그들이 목을 매어서 죽는다면 그 쳇바퀴 도는 삶, 자신이 아무런 변화도 줄 수 없는 삶에서 탈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래도 저래도 크게 잘 되었거나 비극적인 결말은 아닌 듯 싶다.



글을 쓰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 점은 고고와 디디는 고도라는 보이지 않은 끈에 묶여서 마음대로 다른 곳에 가지도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 와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럼 그들은 피해자들인가?

그런데 왜 그들은 소년을 따라 고도를 만나러 갈 생각을 하지 않나? 소년이 걸어서 매일 소식을 전해 줄 수 있는 거리라면 충분히 그들도 소년을 따라 고도를 만나러 갔을 수 있지 않나? 그들은 정말 고도를 만나고 싶었을까? 아님 고도를 기다린다는 핑계로 삶의 이유를 찾았던 것은 아닐까? 그 핑계로 여튼 살아왔지만 더 이상 그 이유로 살기엔 넘 의미없고 지긋지긋해서 이젠 탈출을 생각하려는 걸까?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 알을 깨기 직전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보여지기엔 단순하고 심플해서 더 자유롭고 다양한 해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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