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 시몬 드 보부아르 (1964)
예전에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그의 연인 보부아르 책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제2의 성>이 가장 유명한 책이니 그 책을 접해보려다가 이 <아주 편안한 죽음>이 제목과 내용 소개가 눈이 띄어서 이걸로 구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엄마는 혼자 살고 계시다가 넘어지셨는데 일어나실 수가 없었다. 정말 힘들게 전화기까지 바닥을 기어가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구출되셨다. 넘어지시면서 대퇴부 경부가 부러지셔서 바로 입원을 하고 자녀인 시몬과 여동생 푸페트가 바로 엄마를 찾아간다.
치료를 시작하기 위해 이것저것 검사해 보니 종양으로 소장이 막혀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엄마가 암에 걸린걸 알게 된다. 평생을 암에 걸릴까봐 전전긍긍했던 엄마를 알기 때문에 복막염이라고 말해주고 뱃속에 있는 고름을 제거한다.
엄마는 아주 멀쩡해 보이다가 갑자기 당장이라도 죽을것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 또 멀쩡하다가를 반복한다. 시몬과 푸페트는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실 시몬은 엄마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엄마는 딸들을 무척 통제했었고 자기 빼고 둘이 시간을 보는 것 조차 싫어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엄마는 자유연애를 하겠다고 동네방네 알렸던 큰 딸 시몬의 모습이 마음에 들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이 죽고 경제적인 도움을 시몬에게 많이 받았기 때문에 시몬을 함부로 대하지 못헸고 무척 조심스럽게 대했다. 둘은 계속 거리가 있었고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투병중에 육체의 연약함을 적나라하게 보일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대하자 시몬은 엄마와 동일감을 느끼고 엄마도 더 시몬에게 감추지 않고 다 보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엄마가 욕창이 심해지고 진정제와 모르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생활에 이르르자 시몬과 푸페트는 빨리 죽음이 이기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정말 환자 보호자들이라면 모두 다 이 딜레마를 겪을 것 같다. 환자가 우리 곁에 계속 살아있으면 좋겠으면서도 이 고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길 바라기 때문에 죽음의 세계로 가길 원하는 마음...
얼마 전 친했던 언니의 친정 어머니가 혈액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언니의 아버지도 작년에 코로나에 합병증으로 돌아가셨고 친정엄마는 혈액암 때문에 계속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평생 몸이 안 좋으셨던 아버지 병수발 때문에 맘 편하게 지내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셨는데 친정 엄마가 몇 년 만이라도 맘 편하게 살다가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혈액암은 심해졌고 입 안에 수포가 심하게 생기셔서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음식도 못먹고 말도 하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숨이 막혀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직전 너무나 괴로워하시는 엄마를 보며 빨리 고통없이 데리고 가시라는 기도가 간절이 나왔다고.... 그런데 그런 기도하는 것에 대해 마음에 불편함이 계속 있었다고....
정말 그랬을것 같다. 나라도...
나의 친정 아버지는 뇌경색을 겪으셔서 몸 전체 왼쪽에 마비 증상이 있으시다. 그래도 많이 좋아지셔서 스스로 거동도 하시고 혼자서 여러 일들을 하실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모든 일을 하시기 어려우시기 때문에 보호자가 있어야 정상적인 생활을 하실 수 있다. 며칠 전 친정 엄마가 며칠 집을 비워두셔야 할 일이 있어서 아빠 식사 준비와 생활을 도와드린 적이 있었는데 언젠가 이렇게 매일 부모님을 돌봐드려야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었다. 아직 겪지 않아서 어떠하다 라고 말 할순 없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그리고 나중에 나도 이렇게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이 생길 때 우리 아이들은 잘 감당할수 있을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됨...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는데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을 다 책임지며 그 많은 사람들에게 헌신하며 사는 건 불가능하니 가족이라는 특정 사람들을 주셔서 그 사람들만큼은 꼭 책임지고 사랑하고 도와주도록 만드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며 사는 것이 진짜 사람다운 사람인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가족의 모습이 나와 직결된 일이라고 잘 생각을 못했는데 이번에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마음을 다잡게 되는 것 같다.
시몬은 무신론자인다. 그래서 영생에 대해 믿지 않고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러니 한 것은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마지막 순간에 변치 않는 그 무언가를 새겨 넣을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엄마의 임종을 지켜야하는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너무 웃기지 않은가? 무신론자들에게는 인간은 결국 먼지가 되는 존재인데 그 인간에게 변치 않은 그 무언가를 새길수 있다라고 생각했다는 게 정말 맞지 않은 이야기니 말이다.
이성으론 신이 없고 영생, 영원이 없어서 죽으면 끝인데 우리의 마음은 영원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듯이 여기고 있다. 이 본능은 그들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런 모순 상태를 그냥 원래 그런거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넘길 수 밖에.... 실제로 보부아르 철학의 핵심은 ‘애매성’이다. 그리고 그 애매성은 원래 그런것이기 때문에 어떤 변화를 주거나 특정 결론을 내리는 것을 경계한다. 하지만 우린 본능적으로 그런 애매한 결론이 불편하다.
시몬이 자신의 엄마의 죽음을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죽음과 싸우고 있는 엄마의 곁에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끝까지 함께 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헌신하며 계속 그녀를 위로해주고 사랑을 주었던 딸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녀와 함께 해주어서 그녀는 자신의 괴로움을 계속 호소할 수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실제로 누구에게도 자신의 괴로움을 말하지 못한채 쓸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죽음을 피해갈수 없지만 내 가족이 이런 편안한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