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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지지 않는 열정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 마리즈 콩데(1986)

by Heart Mover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jpg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의 작가 마리즈 콩데는 전 세계 하나밖에 없다는 2018 대안 노벨문학상인 뉴 아카데미 문학상의 수상자이다. 이 분은 흑인 여작가인데 어렸을 때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유복하게 지냈으나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흑인 여성의 비참한 처지를 몸소 경험하게 된다. 딱하게도 사랑에 실패하여 미혼모 신세가 되었고, 그 때문에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를 버리자 가난과 결핵, 미혼모의 신세로 아주 힘겨운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삶 덕에 그녀는 아프리카의 삶을 깊게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작품들을 쓸 수 있었다. 귀한 가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선 반드시 그 가치만 한 대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삶이었다.



이 책은 주인공 티투바의 엄마 아베나가 바베이도스로 끌려올 때 배에서 강간 당해 티투바를 임신하게 되는 사건부터 시작된다. 아베나는 농장에 끌려갔고 처음엔 농장주 아내의 몸종으로 있었으나 아베나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자 농장주는 자꾸 죽으려고 했던 흑인 노예 야오에게 아베나를 강제로 보낸다. 원래 전사로 태어나 전사로 살았던 야오는 자신의 삶에 비참함을 느껴 자살을 기도했지만 배불러 있는 아베나를 긍휼히 여겨 마음을 고쳐먹어 그녀와 아기를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성실히 농장 일을 한다. 티투바가 태어나고 아베나는 자신의 아기를 미워했지만 야오는 아낌없이 사랑해 준다. 티투바는 거다란 야오의 손위에 자신의 자그마한 손을 올리며 그의 사랑을 흠뻑 느낀다.



그렇게 평온하고 행복한 세 식구의 삶이 티투바가 7살이 되었을 때, 아베나가 자신을 강간하려는 농장주를 상처 내게 해서 교수형에 처해지고, 다른 곳으로 팔려가는 야오가 자살을 하게 되면서 완전히 깨지고 만다. 그 불쌍한 아이를 동료들은 죽지 않도록 도왔고 티투바는 홀로 지내는 만 야야 밑에서 딸처럼 자란다. 만 야야는 약초들을 연구해서 치유하는 약을 만들고 보이지 않는 존재와 소통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의 능력을 열심히 티투바에게 전해주고 그녀가 죽은 뒤 티투바는 그녀의 역할을 다한다. 만 야야까지 죽어서 온전히 혼자가 되었지만 이미 죽은 자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티투바는 자신을 지키는 세 영혼을 느끼며 외로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지내다 우연히 존 인디언이라는 다른 농장주 젊은 흑인 노예를 만나게 되었는데 온갖 여자들을 다 건드리는 그런 자였다. 하지만 티투바는 사랑에 빠져버렸고 엄마와 만 야야의 큰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라가서 결혼하고 거의 매일 격렬한 사랑을 나눈다. 존 인디언 집에 들어간 티투바는 여주인 수재나 엔디콧의 마음에 들지 못했고, 그녀가 아프기 시작하자 자신이 아픈 것은 티투바의 저주로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없는 자들에게 자비도 베풀 줄 알았던 사람이었지만 존과 티투바는 아주 냉정하고 폭력적인 목사 새뮤얼 패리스의 종으로 팔아버린다.



그 집에서 티투바는 목사의 폭력에 괴로워하는 아내 앨리자베스와 곧 마음이 통하게 되고 아이들과도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그 집안 여자들이 아플 때마다 티투바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어서 거의 죽을 뻔했던 이들을 몇 번이고 살려냈다. 그들은 처음에 보스턴에서 살다가 사정이 나빠져서 세일럼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선 티투바를 마녀로 여겨 아주 경계했고 그 마을의 여자들은 티투바 저주 때문에 자신들이 곧 파괴될 거라는 과대망상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잘 지내고 서로 의지했던 목사네 여인들도 티투바를 마녀로 보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저주를 걸고 다 파괴할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말들을 거들며 결국 티투바와 그 지역에서 이상한 여자로 여겨졌던 두 사람까지 포함해 재판을 받으려 감옥에 갇히게 한다.



마녀재판은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되는 상황이 생겼고 그녀는 감옥에 나올 수 있었으나 감옥 생활에서 지불해야 했던 비용들을 갚아야만 하는 처지였다. 그런 그녀를 돈은 많았으나 키가 작고 몸에 뒤틀려있는 유대인 벤저민 코헨 다제베두가 그녀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의 집은 얼마 전에 아내가 죽어서 엉망이 되었고 아이들도 방치 상태였는데 티투바가 가서 그 집을 잘 보살폈다. 평생 다른 민족들의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아서 약자의 처지를 잘 알았던 벤저민은 티투바를 잘 대해주었고 티투바도 이 가정에게 최선을 다하고 죽은 아내와 벤저민이 재회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런 티투바를 벤저민이 깊이 의지하면서 둘은 사랑까지 나누는 사이가 된다. 벤저민이 티투바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자유라고 말했고 벤저민은 아내를 또 잃을 순 없다며 못 들은척한다. 주변 사람들이 벤저민과 티투바를 출신의 이유로 혐오하며 밤에 그들의 집에 불을 지른다. 다락에서 같이 잠을 자고 있었던 둘은 겨우 빠져나왔으나 밑에서 자고 있었던 아홉 명의 아이들은 그대로 죽고 말았다. 그저 자다가 갔으니 괴롭지 않게 갔을 거라 위로하며 티투바는 다시 죽은 벤저민 가족들을 불러 서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벤저민은 그녀가 원했던 자유를 주어 티투바는 고향 바베이도스로 돌아간다.



그렇게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갔는데 그곳은 전쟁터와 같았다. 노예들이 도망가고 농장주들과 대치했다. 그 와중에 티투바는 노예 신분도 아님. 같이 배를 타고 온 일행의 인도로 도망 나온 노예의 지역 벨플레인 근처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의 리더 크리스토퍼가 그녀를 애인으로 삼아 사랑을 나누며 자신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달라고 한다. 하지만 티투바는 자신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고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크리스토퍼는 더 이상 그녀에 대한 기대나 환상을 갖지 않는다.



그의 행동이 바뀐 것을 느낀 그녀는 그곳을 나와 원래 자신이 살았던 곳으로 돌아갔는데 사람들이 많이 맞아서 거의 죽을 뻔한 소년 이피게니를 데리고 온다. 티투바는 그를 정성껏 보살펴 살려주었고 살아난 이피게니는 티투바를 어머니라고 하며 자신을 정성껏 키웠던 친어머니의 이야기를 해준다. 그 이야기로 티투바는 그에게 더 큰 애정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피게니는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고 티투바는 그를 막고 싶었으나 결국 그러지 못했다. 반란 전날에는 불안해하는 이피게니와 티투바는 함께 누워 잠을 자려는데 그가 티투바와 사랑을 나누려 했고 처음엔 거절했으나 결국 그녀도 허락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반란은 실패했고 이피게니와 함께 있던 티투바도 함께 처형당한다. 죽고 나서도 티투바는 영혼의 모습으로 잃어가는 어린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자신의 딸처럼 한 아이를 품어 정성을 다해 키우며 돌보는 모습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약자들이 일방적으로 탄압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을 알게 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 역사를 일부러 찾아서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약자의 이야기들을 일부러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평단이기 때문에, 지금 듣고 있는 수업과 관련 있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고 슬픈 역사와 약자들의 이야기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그것이 지금 내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알 것 같다.



과거의 흑인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여성들의 삶은 얼마나 힘겨운지, 그 두 면을 모두 다 가지고 있는 흑인 여성들의 삶은 도대체 어떨지 나는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누가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한 마디만 해도 분노가 나고 되갚아 줘야겠다는 생각만 머리에 가득하게 되는 데, 평생 사회 전체가 나를 사람으로서 존중하지 않고 하대하며 폭력을 가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버거운 삶을 사는 것일까...



이 책을 읽다가 울컥했던 부분은 동료가 매질 당하다가 죽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고 자유로워진 그 동료를 진심으로 축복하고 기뻐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삶보다 죽음이 더 희망적이고 행복한 것이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 끔찍하고 지옥 같은, 눈에 보이는 세계가 다가 아님을 보여주는 부분은 큰 자비를 입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논리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세계가 저주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고 생명을 살리는 모습도 정말 아름다웠다. 그것이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티투바는 외롭고 공허하여 빈 껍데기 같은 삶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삶 가운데 큰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랑의 나눔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을 고발하고 배신하여 떠났지만 가장 처음이었고 가장 큰 쾌락을 주어서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존 인디언에 대한 티투바의 감정도 애틋하다. 왜 남자 없이 못 살까?라는 고민이 귀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지만 사랑을 나눌 때 느낄 수 있는 그 마음과 쾌감만큼은 정말 아름답고 충만한 것임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나를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준 티투바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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