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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과 이기심을 멈춰야
참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 레프 톨스토이 (1886)

by Heart M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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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톨스토이님의 작품이고 믿을만한 출판사 '현대지성'에서 나온 책이라서 꼭 읽어보고 싶었다.

나름 톨스토이님의 작품들을 많이 읽었는데 이 작품은 이번에 처음 만났다. 읽고 나서 세밀한 관찰과 깊은 통찰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잘 썼다!' 라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책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주인과 일꾼', '세 죽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피부에 와 닿는 기분이었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는 직장 동료의 모습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 된다. 그와 친밀했던 이들 조차도 그의 삶에 대한 애도보다는 그가 사망하여 공석이 된 그 위치에 누가 올라갈 것이며 따라서 자신은 어디쯤으로 이동할 것인지에 대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모습들이 나온다. 얼마나 현실적인지! 죽은 사람의 안타까움은 그 사람의 것이지 산 사람은 자신들의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 당연한 상황이 또한 얼마나 씁쓸하게 느껴지는지....


장례식 모습이 나오고 죽은 이반의 아내는 믿을 만한 남편 동료를 붙잡고 자신이 처한 불쌍한 상황을 마구 어필하면서 어떻게 하면 재무성에서 돈을 더 받아낼 수 있는 지를 자세히 물어본다. 그리고 그 동료는 미리 약속 된 카드 놀이를 하러 간다. 이반의 죽음은 누구에게도 큰 슬픔을 주지 못했고 그 모습이 정말 쓸쓸하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 뒤로 이반 일리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데 그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이반 일리치는 법학원에서 공부한 후 특별 임무를 수행하는 관리 시절을 거쳐 예심판사가 된다. 사회활동을 잘하는 편이라 다른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잘 관계를 했고 품위있게 행동했다.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지 않고 직무에 최선을 다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도 들었다. 그리고 결혼을 했는데 아내와는 그리 행복하게 지내지 못했다. 그는 결혼도 자신의 품위를 드높이는 수단으로 생각했는데 그의 아내는 그런 그의 욕구를 채워주지 했다. 그녀는 자신이 힘들때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는 자신의 직무로 그녀를 피했다. 그럴 수록 그녀는 더 그를 들볶았고 이반은 더 일에 매달려서 살았다. 그렇게 자신을 완전히 지키면서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그가 옆구리에 통증을 느꼈다. 얼마 전 새로 이사 한 집을 멋지게 꾸미기 위해 사다리에 올랐다가 떨어지면서 틀 손잡이에 부딪혔다. 그 당시에는 통증이 곧 사라졌었는데 아마도 그 때 그의 장기가 다쳤던 것 같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반은 통증을 느낄 때 자신의 일에 집중해서 그 괴로움에서 도망하려고 했지만 이 통증은 점점 커져서 더 이상 그가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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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의 괴로움에서 도망가기 위해, 점점 강하게 느껴지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반은 예전에 썼던 방법들을 써보지만 별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점점 더 절망하며 고통스럽게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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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느끼는 육체의 고통도 힘들었지만 정서적인 외로움이 정말 힘들었다. 이반 곁에서 진실하게 그를 돕는 게라심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반의 괴로움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괴로움은 온전히 그의 것일 뿐, 그의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고통을 나눠지려 하지 않았다. 이반은 그것이 너무나 괴로우나 그 역시도 자신의 진짜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본인 조차 진실하지 않은 것을 어찌 타인을 탓할수 있으랴... 정말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이반은 죽음에 가까울 수록 자신이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점점 깨달을수 있었는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인생을 전체 다 부정하는 것이므로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육체의 통증과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점점 더 진하게 느껴지는 외로움을 느끼며 먼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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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노력해도 없어지지 않은 통증에 대한 분노와 자신이 잘 살아왔다고 우기며 자신을 외롭게 만든 가족들에 대한 원망과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의사들의 원망에 쌓여있던 이반은 드디어 자신의 가장 가까운 주변, 가족을 보았고 그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관심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서 타인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감정이 생겨나고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는 표현을 한다.


그 때 비로소 그의 안에서 그를 너무나 괴롭혔던 무언가가 나가는 것을 느끼고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자 죽음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니라 빛이었고 두려움이 아닌 자유였다.


이 부분에서 이반이 느낀 큰 은혜의 파도가 내 안에도 밀려들오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영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는 작가에게 절로 감탄이 나왔다.


얼마전에 읽었던 헤밍웨이의 <킬라만자로의 눈>이 생각났는데 거기선 죽음의 실제적인 섬뜩한 느낌을 강렬하게 느꼈다면 이 작품에선 삶 자체를 진지하게 돌이켜보면서 죽음의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본 기분이다. 죽음은 결코 유쾌하지 않으나 결코 나와는 떨어질 수 없는, 언젠가는 반드시 내게도 올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만날 죽음을 미리 배우는 기분이다. 그래서 정말 좋았다.


분량이 길지 않았는데도 많은 양의 내용을 읽은 것처럼 마음이 꽉 차고 감동이 남았다. 이런 깊은 감동을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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