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멈출 수 없는 탈선 기차

안나 카레니나 - 레프 톨스토이 (1878)

by Heart Mover
안나 카레니나.jpg

드디어! 톨스토이님의 걸작 <안나 카레니나>를 만났다. 대단한 명성만큼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감탄이 나오는 책이었다. 이래서 그런 극찬들을 받았구나 싶었던 부분이 참 많았음.


원래 조금의 스포도 당하지 않고 완전 처음 내가 직접 책을 만나, 누군가의 감상과 섞인 만남이 아닌, 온전한 나만의 만남으로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정말 본의아니게 스포 내용이 있을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출판사에서 써 놓은 책 소개에 스포를 당함.... 얼마나 김이 빠지는 지... 안나가 자살하는 걸 미리 알고 보는건 정말 김빠진 일이었다. 모르고 봤다면 안나가 기차역에서 감정의 회오리 속에 빠져서 죽음을 실행에 옮길지 고민할 때 엄청 마음 졸이면서 봤을텐데...


그래도 처음 책을 읽어서 알게 된 부분은 진짜 주인공은 레빈이라는 것이다. 레빈의 이야기가 얼마나 빠져들고 같이 고민이 되면서 그의 감정의 변화와 고민들이 와닿던지.. 특히 레빈은 자신이 정말 사모했던 키티에게 청혼을 거절당하고 나서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하는데, 그곳에서 소박하게 살아가고 그안의 작은 행복을 누리는 젊은 농부 부부를 보며 자신도 그렇게 소박한 마음으로 여자를 만나고 가정을 꾸려야하지 않을까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굳혀졌다고 믿었는데 우연히 지나가는 마차 안에 있는 키티를 보는 순간 그 동안 자신의 마음이 변했다는 것은 완전히 착각이었음을, 얼마나 키티를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지 강렬하게 느끼는 데 정말 사랑하는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공감되는 장면이다. 그와 키티가 서로 앞글자만 쓰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때는 오글거림이 없지 않아 있으면서도 얼마나 사랑스러워 보이던지 ㅎ 전체 내용에서 가장 설레고 행복했던 부분들이다.


레빈의 둘째형이 죽음 앞에 있을 때 키티가 자발적으로 따라와서 환자를 위해 환경을 쾌적하게 바꿔주고 그의 영혼을 위해 영성체를 받게 해주며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정말정말 최선의 노력을 한다. 그 와중에 형은 며칠동안 정말 최악의 컨디션을 겪으며 주변을 너무나 괴롭히는데 죽을것 같으면서도 안 죽음.. ㅠㅠ 키티는 너무너무 지쳤지만 그래도 끝까지 곁을 지켜 그가 세상을 잘 떠날수 있도록 돕는다. 레빈은 너무나 이성적이어서 형 앞엔 죽음 밖에 없음을 보았고 그것을 느끼자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키티는 그의 마음을 최대한 편하게 해주기 위해 정말 할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정말 아름다운 부부였음.


레빈은 형의 죽음 앞에서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왜 살아야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명확한 답들을 찾을수 없어서 무척 답답해 한다. 신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싫고 유물론적 사상으로 자신의 답을 찾고 싶었으나 그것은 명확하지 않았고 허무함을 느꼈다. 그는 이렇게 사는것이 의미 없다고, 결국 죽는것 말고는 답이 없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록 인생의 허망함을 느꼈으나 그는 생각과 상관없이 그저 마땅히 해야할 그의 일들을 하며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생각을 안하고 그냥 해야할것을 할 때 가장 그답게 잘 살수 있었다. 결국 그는 신이 부여해준 선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살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그르게 사고했으나 옳게 살아왔음을 느끼며 큰 행복과 만족을 느낀다.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 이렇게 레빈은 인생의 허망함 앞의 죽음의 위기가 있었으나 자신이 해야할 것들을 하며 진리를 깨달았고 큰 행복과 만족감으로 그의 삶의 끝까지 잘 살아냈다.


반면 자신의 번뇌에 벗어나지 못해 결국 죽음을 택한 인물이 나오는데 바로 안나다.

안나는 고위 관료인 카레닌과 결혼하여 세료자 아들 하나를 두웠다. 그녀는 정말 아름답고 지혜로우며 매력이 넘쳐서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녀는 그녀의 위치도 역할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에 맞게 잘 처신하는 정말 고결하고 조신한 여인이었다. 안나는 자신의 오빠 스테판이 바람을 피웠는데 올케언니 돌리가 못살겠다고 이혼하겠다고 해서 직접 오빠집으로 와 돌리의 마음을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해준다. 덕분에 오빠 부부는 잘 화해하고 잘 지내게 되었는데 올케 언니 돌리의 여동생 키티를 만나게 되고 함께 파티에 참석하다가 브론스키를 만나게 된다. 키티는 레빈에게 청혼을 받았을 때 레빈에게 마음을 있었으나 엄마가 더 좋아하는 브론스키와 곧 결혼할 것 같아서 청혼을 거절한 상태였는데 사실 브론스키는 키티에게 호감은 있으나 바로 결혼할 마음은 없었다. 그러한 상황애서 무도회에 셋이 만나게 되는데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겉잡을수 없이 빠져들고 만다. 브론스키가 자신에게 싸늘하다는 걸 느낀 키티는 절망에 빠지고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호감을 느끼나 그래도 자신의 가정을 생각하여 급하게 다음날 집으로 떠난다.


그런데 브론스키가 그녀를 쫓아서 그녀가 탄 기차에 같이 타고 심지어 안나를 마중 나온 남편에게도 모습을 보이며 인사함! 이 당돌함은 정말 대책없음이다. 그는 그녀에게 끝없이 구애하고 결국 육체적 관계를 갖게 되는데 작가는 그 모습을 살인자가 자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시체를 보고 느낄 법한 감정은 느꼈다고 표현하는데 정말 소름돋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고결하고 조신했던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육체적 관계로 죽어버렸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의 죄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했지만 자기 때문에 세상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남편을 증오하고 혐오하고 미안한줄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변한다. 얼마나 뻔뻔한지... 그런데 그녀는 원래 뜨거운 애정은 없었으나 남편과 진솔하고 서로 존중할 줄 아는 관계였다. 하지만 그런 미덕을 갖고 있었던 그녀는 죽었다.


그녀는 심지어 나중에 키티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지내는 레빈과 만나는 기회가 생기는 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를 홀릴만한 말과 행동들을 한다. 실제로 레빈이 크게 유혹을 받고 안나를 감탄하게 됨... 집에 돌아와 키티를 보고 다행히 자연치유가 되었지만 안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륜녀인 그녀를 사교계에서 전혀 받아주지 않으나 브론스키는 자유롭게 활보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점점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집착하며 결코 만족할 수도, 채워지지도 못할 사랑을 달라고 요구한다. 갈수록 그녀는 과대망상증, 피해망상증이 정말로 심해졌고 논리적인 사고를 거의 하지 못하며 항상 불안하고 평안이 없었다.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때는 브론스키가 분명 자기말고는 아무에게도 마음이 없음을 분명히 알았으나 그녀는 자주 이성을 잃었고 대상없는 누군가에대해 엄청난 질투를 느끼며 미쳐갔고 결국 기차에 뛰어든다. 뛰어드는 순간까지 안나는 나는 무슨 짓을 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서 그렇게 죽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놀라웠던건 이 작가는 분명 남자인데 어떻게 이렇게 세세히, 이렇게 미묘한 여성의 마음과 심리를 알고 있을수 있을까? 라는 점이다. 정말 놀라웠다. 작가가 누군지 모르고 봤다면 당연히 여작가라고 생각했을듯. 안나의 심리 표현이 정말 미쳤다. 레빈이 진리를 향해 고민하고 고뇌하는 부분도 정말 대단했지만 남성이 이렇게 사랑에 빠져서 완전히 인생이 망가져 나중에 미쳐간 여성의 마음의 변화와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잘 이해하고 알수 있을까라는 감탄이 계속 나왔다.


<안나 카레니나>를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것에 정말 동의하는 게 우리 일상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그 안에서 겪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들, 영적인 의미들이 다 담겨있는게 정말정말 놀랍고 대단하다. 사랑해서 가슴 앓이 하고 사랑이 이루어져 황홀하고 결혼해도 되는지 엄청 고민하고 결혼날도 정신없고 아이를 낳을 때 그 엄청난 고통중에 의연한 어머니의 모습과 내 아이인데 전혀 실감은 안나는데 혹시나 잘못될까봐 큰 불안감이 들고(정말 내가 그랬음!) 타인과의 관계 가운데 너무 피곤하고 신경쓰고 싶지 않은데 신경 써야만하는 그 미묘한 관계들과 역할 등등 지금 현재도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인생이 녹아있다. 어쩜 이렇게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영적인 감각과 함께 이렇게 잘썼을까! 정말 감탄이 나온다.


<전쟁과 평화>도 정말 인상깊게 봤었는데 얼마나 많은 목숨이 전쟁으로 죽어나고 역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고찰이 가득한 내용이라 엄청 묵직하고 내용이 정말 방대했다. 그에 비해 <안나 카레니나>는 <전쟁과 평화>에 비해서는 무겁지 않게 느껴져서 받아들이기가 더 수월한 부분도 있었다.


읽으면서 이 책 안에 <이반일리치의 죽음>도 보이고 <부활>과 <전쟁과 평화>의 여러 인물들을 다시 만난듯한 느낌도 들어서 더 반가운 느낌도 있었다. 그리고 톨스토이 님의 평소 품고 계셨던 생각들이 많이 보여서 더 의미있게 느껴졌다. 담긴 내용들은 <전쟁과 평화>가 더 묵직하니 대단한 깊이가 느껴지나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엔 더 보편적인 진리들이 많이 담긴 <안나 카레니나>인듯 하다. 최고의 작품을 만나서 영광이었고 행복했다.

keyword
이전 10화정신적 죽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