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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환 Andy Aug 26. 2022

서툴게 보이는 그림이 좋다,
추사가 그러했듯

추사 김정희의 불계공졸의 미학을 논하다

▲ 을지로 카페에서 30분 만에 그린 그림. 두인(頭印)으로 불계공졸 도장을 만들어 찍었다. ⓒ 오창환


 
어반스케쳐스 서울의 8월 모임 장소는 을지로 일대다. 이름하여 '을지 유람'. 을지로는 오랜 논란 끝에 결국 모두 철거하기로 결정되어서, 일부 구역은 철거가 거의 완료되어 가고 일부 구역은 곧 철거를 앞두고 있다. 단, 대림 상가, 청계 상가, 세운 상가 등은 현 상태를 유지한다. 이 상가들은 고가로 연결되는 공사가 완료되어 엘리베이터도 있고 편리하게 다닐 수 있다. 

서울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을지로지만 골목길로 들어가면 시간이 멈춘 듯한 광경이 벌어진다. 같이 간 스케쳐들 중에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냐며 놀라워 하는 분이 많았다.

이날은 나올 때부터 최대한 서툴게 보이는 그림을 그리려고 색연필과 볼펜을 갖고 나왔다. 종이도 그에 맞게 준비했다. 수채화 용지는 요철이 있어서 색연필이 잘 안 나가고 색을 칠했을 때 오목한 부분에 색이 잘 안 먹는다.  

나는 색연필 그림에는 마쉬멜로우 지(紙) 209그램짜리를 쓴다. 표면이 매끄러워서 색연필이 잘 나가고 채색했을 때 색도 예쁘다. 단, 이 종이에는 물을 쓰면 안 된다. 색연필 그림에서 수채화 종이가 비포장 시골길이라면 마쉬멜로우 지는 고속도로다. 마쉬멜로우 지는 볼펜 그림에도 좋다.

세운 상가에서 카페를 색연필로도 그리고 볼펜으로도 그렸는데, 볼펜 그림이 더 서툴게 나왔다. 나는 이렇게 서툴게 보이는 그림이 좋다. 그 이유는 추사 선생님의 미학을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아티스트이셨던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예술의 최고 경지를 불계공졸(不計工拙)이라 하셨고 이를 평생  추구하셨다. <완당 평전>을 쓰신 유홍준 교수님의 말을 들어보자.
   

추사는 평생 많은 문자 도장을 새겨 작품 첫머리에 찍는 두인(頭印)으로 사용하곤 했다. 그중에는 '불계공졸(不計工拙)'이라는 것이 있다. 즉 "잘되고 못 되고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홍준 완당평전 1, 14쪽 인용)


완당은 과천 시절로 들어서면서 비로소 자신이 스스로 허물을 벗었다고 권돈인에게 자신감을 표하였으며, 그 경지를 "잘되고 못 되고를 가리지 않는다"는 '불계공졸(不計工拙)'이라고 했다. 이 말이야말로 추사체'의 본령을 말해주는 한마디이다. 이 경지를 위해 그가 얼마나 애써왔던가.
(유홍준 완당평전 2, 712쪽 인용)



그래서 보통 '불계공졸'이라고 하면 유 교수님의 해석을 쫓아 "잘 되고 못 되고를 가리지 않는다"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그런 해석은 글자의 뜻을 헤아리는 정직한 해석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가 불분명하고 추상적이다.



나는 추사 선생님이 이론가로서가 아니라 작품을 하는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예술적 지향점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에 불계공졸이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예술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말했다고 본다.



그래서 불계공졸의 의미를 다시 해석해 본다. 불계(不計)는 계산하지 않는다는 뜻이니 불계공졸은 공과 졸에 대해 계산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工)은 공들여 작품을 하는 것을 뜻하는데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공들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이야기다. 졸(拙)이라는 단어가 미학적인 측면에서 갖고 있는 의미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기교가 없이 소박하다, 둘째는 서툴다는 것이다. 서툴다는 것이 기교가 없이 소박하다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에 졸은 서툴다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불계공졸을 다시 해석하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공들여 만들거나 서툴게 만들거나를 따지지 않겠다는 것인데 좋은 작품을 만들 때 공들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니 불계공졸의 핵심은 서툴게 보이는 작품도 좋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추사 선생님은 실제로 서툰 듯한 글씨를 추구하셨다. 물론 서툴게 보여도 멋지고 훌륭한 작품이라야 한다. 진짜 서툴고 미숙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



추사 선생님은 평생 글씨를 쓰셨고 기술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신데 어찌 서툴게 보이는 작품을 그렇게 높게 생각하셨을까? 예술의 기법을 갈고 닦으면 기술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술의 핵심인 낯선 느낌과 새로움의 추구와 멀어질 수 있다. 추사 선생님을 그것이 싫으셨던 것 같다.



불계공졸은 유교 사상이 지배하는 당시의 엄격한 가치관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미학이며 추사 선생님의 시대를 앞서간 혜안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기법적 완성도보다는 새로움의 추구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국민 화가라 할 수 있는 장욱진 화백의 그림도 대표적으로 서툴게 보이는 그림이고, 이중섭 화가의 은박지 그림이나 자화상을 보면 초등학생이 그린 그림 같다. 동양화의 대가 김기창 화백도 정말 기법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오르신 분이신데 말년에는 '바보 산수'라고 해서 일반적인 비례를 무시하는 그림을 그리셨다. 이 외에도 수많은 화가들이 천진난만한 무기교의 그림을 추구한다,





▲ 권영교 선생님이 쓰신 최백호의 노래 <바다 끝>. 서툴게 보이지만 너무 멋진 글씨다. 사진제공;권영교 ⓒ 오창환


 
불계공졸의 미학은 그림이나 글씨 모두 해당되는데 서툰 듯하면서 너무나 매력적인 글씨를 쓰시는 분이 있다. 대구에서 서실을 운영하시며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권영교 선생님 글씨야말로 불계공졸의 미학을 보여준다. 만약 추사 선생님이 이 글씨를 보시면 무릎을 치셨을 것 같다(Instagram.com/calligraphy.kouen).

불계공졸이란 추사 선생님의 미적 지향점이고 다른 아티스트들은 또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다. 서툴게 보이는 것보다는 최고의 기교를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장에서 빠른 시간에 그려야 하는 어반 스케치는 불계공졸의 미학이 잘 어울린다고 본다.  

그런데 서툰 듯하면서 잘 된 작품과 진짜 서툰 것과는 어떻게 구별하냐고? 그건 작품을 보는 눈이 어느 정도 있으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면 그림을 좀 더 많이 보고 안목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 올림픽에서 펜싱 경기를 보고 감동 받아 그린 그림. 사진을 보고 10분 만에 그렸다. 손발이나 칼이 어설퍼 보이지만 자유스러운 이런 그림이 좋다. ⓒ 오창환



태그:#추사김정희#불계공졸#권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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