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영웅'에게 걸맞은 이 자리
▲ 충무공 이순신 동상 1968년에 세워진 충무공 동상이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결 높아진 하늘을 배경으로 동상을 그렸다.
다시 열린 광화문 광장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 개봉했다. 김한민 감독의 <명량>이 2014년에 개봉했으니 8년 만의 작품이다. <명량>이 우리나라 영화에서 가장 많은 관객인 17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으니 속편이 2~3년 안에 나올 줄 알았는데, 김한민 감독이 어떤 이유로 속편을 만드는 데 8년이나 걸렸는지 궁금해하며 영화관을 향했다.
명량은 잘 만든 영화지만 너무 '국뽕'에 취해있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한산: 용의 출현>은 사뭇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거북선과 판옥선의 활약 앞에서 담담함을 유지할 수는 없다. 이 영화도 <명량>에 이어 잘 만들어진 마스터피스를 보는 느낌이며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갖춘 영화다. 하긴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닌가.
마침 광화문 광장이 보수를 마치고 지난 8월 6일 개장했다. 지난 9일 그곳을 방문했다. 오랫동안 가림막에 가려져 있어서 보기 싫었는데 깔끔하게 정리해서 개장하니 상쾌한 기분이다. 광화문에는 세종대왕 동상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에 이 두 분을 모신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우리나라는 동상이 참 적다. 큰 동상을 세우는 것은 입지와 작가를 선정해야 하고 예산도 많이 들어가지만 무엇보다도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여론이 극심하게 나누어져 있어서 어떤 인물이라도 여론 청문회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이순신 동상은 그런 논쟁을 확실히 피해 갈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크고 작은 이순신 동상이 정말 많다.
1968년에서 72년 사이에, 정부 주도의 '애국선열 조상건립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우리나라 위인15기의 동상을 제작한다. 당시 만들어진 동상은 강감찬, 김대건, 김유신, 사명대사, 세종대왕, 신사임당, 원효대사, 유관순, 윤봉길, 이순신, 이율곡, 이퇴계, 을지문덕, 정몽주, 정약용 동상이었다. 장소가 옮겨진 동상은 많지만 모두 현존해 있고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 조각가가 모두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애국선열 조상건립위원회의 첫 번째 프로젝트가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었다. 이는 물론 고 박정희 대통령의 의중이 가장 중요했겠지만, 서울의 중심인 세종로와 태평로가 뻥 뚫려 있어 남쪽에 있는 일본의 기운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당시 풍수지리학자의 주장을 참고로 했다고 한다.
그 당시 만들어진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이순신 동상과 유관순 동상인데 모두 김세중 조각가의 작품이다. 김세중 조각가(1928~1986)는 1951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1953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같은 해 서울대 미대 교수가 된다. 서울대 미대 1회 졸업생이며 명실상부 해방후 1세대 작가다.
그의 작품으로는 광화문 충무공 이순신 동상, 유관순 열사 동상, 국회의사당에 있는 애국상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각상들이 많이 있다. 그는 천주교 신자여서 혜화동 성당, 절두산 성당 조각상 등 종교 조각도 많이 만들었다.
김세중 조각가는 미술행정가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는데, 서울대 미술대 학장 등을 역임하였고, 국립현대 미술관 관장도 역임하였다.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건립이 끝난 후 과로로 갑자기 사망하셨다.
김세중 조각가가 별세한 후 '김세중 기념사업회'가 발족된다. 시인이자 숙명여대 교수셨던 고인의 아내 김남조 시인이 이사장을 맡으셨다. 고인이 돌아가신 1년 후인 1987년에 제1회 '김세중조각상'을 시상하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규모로 보나 권위로 보나 우리나라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상이다.
김세중 조각가와 김남조 시인 부부가 1955년부터 거주한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자택을 김세중 기념사업회에 기증하여 김세중 미술관이 만들어졌다. 김세중 기념사업회는 기존의 주택을 헐고 3년에 걸친 공사 끝에 2015년 미술관을 개관하였다. 건축 설계는 민현식 건축가가 담당했다 (주소 : 용산구 효창원로 70길 35). 미술관은 2개의 전시실과 야외 조각실, 세미나실, 카페 공간을 갖추고 있다.
동상은 '다큐'이자 '드라마'
새로 조성된 광화문 광장을 보러 갔다. 광화문 광장은 도로를 한쪽으로 밀고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장을 붙여서 면적이 굉장히 넓어졌다. 이순신 동상은 아직도 원래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동상은 역사적인 고증이 잘못됐다고 해서 논란도 많지만, 나는 이 동상을 철거하거나 새로 건립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동상은 다큐멘터리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이기도 하다. 어느 동상이나 작가의 상상력의 여지를 남겨줘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이후 고증을 거친 수많은 이순신 동상이 세워지지만 아직은 광화문 동상만큼 멋진 동상을 보지 못했다.
광화문 동상은 강인한 얼굴 표정, 당당한 자세 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번에 다시 보니 이순신 장군의 팔뚝을 정말 두껍게 표현해 놓았다. 하체는 갑옷에 가려서 안 보이지만 상체의 흉부와 팔뚝을 보면 보디 빌더 몸이다.
이 모든 요소가 결합되어 외적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순신 장군 동상의 주제를 잘 보여준다. 많은 동상들이 우여곡절을 겪고 옮겨지기도 하고 폐기되기도 하지만 이순신 동상이 수많은 논란에서 불구하고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작품의 뛰어난 예술성 때문인 듯하다.
충무공 동상은 도로가 교차하는 곳이자 광화문 광장에 입구에서 있어서 앞이 좁다. 다들 사진을 찍고 지나가는 자리지 머무는 자리가 아니다. 사람들이 머무르는 자리는 안으로 쭉 들어가서 세종대왕 상 앞이다.
이순신 장군은 위기의 영웅이고 위태로운 곳에 위치해 있다. 세종대왕은 평화와 문화의 리더십을 나타낸다.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은 그런 곳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동상의 배치가 썩 잘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오는 가운데도 날이 맑으면 하늘이 훌쩍 높아져 있다. 그 하늘을 배경으로 충무공 이순신 동상을 그렸다.
▲ 고 김세중 조각가의 충무공 이순신 동상은 해방 후 만들어진 조각품들 중 보기 드문 걸작이다.ⓒ 오창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