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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환 Andy Jul 28. 2022

기사 하나 썼는데, 수목원 책자에 제 그림이 들어간대요

국립수목원의 아름다운 전나무숲을 그렸다

▲ 국립수목원 전나무숲. 딴 곳은 더워도 여기는 시원하다. ⓒ 오창환


 
지난주에 국립수목원에 관한 기사('살아있는 숲'을 그렸다)를 썼는데, 수목원 관계자들이 그 기사를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수목원 박물관 책임자분이 한번 보자고 연락이 와서 지난 26일 다시 수목원을 찾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간 '살아있는 숲'에 대한 안내가 부족해서 내 그림을 활용해서 리플릿을 만들고 싶다고 하신다. 흔쾌히 승낙했다. 수목원 측에서는 그림 제공에 대해 고맙다고 하셨지만 나로서도 영광이다.

이번에 와서 들어보니 그간 수목원 내의 산림박물관의 활동이 미흡했는데 올해부터 활발하게 기획 전시를 하고 있으며 다른 좋은 전시도 많이 준비하고 있다고 하신다. 이왕 간 김에 산림박물관 전문연구원 선생님이 박물관 전시를 전체적으로 소개해 주셔서 다시금 찬찬히 돌아보았고 수목원도 다시 한번 돌아봤다.

플래네리즘은 어반스케치의 조상

산림박물관에서 수목원을 관통해서 육림호를 거쳐 반대쪽 전나무 숲까지 걸어갔다. 폭염으로 모든 것이 녹아내릴 것 같은 날씨였지만 전나무 숲길은 그늘이 져서 시원하고 바람까지 살살 불었다. 관람객 한 분이 벤치에 누워서 자고 있는 모습이 부럽다. 전나무 힐링 숲 한 곳에 의자를 펴고 펜을 꺼냈다.

이 아름다운 숲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니 미술사에서 매우 유명한 숲이 생각난다. 퐁텐블로 숲은 파리에서 약 60km 떨어져 있는 아름다운 숲으로 예로부터 프랑스 왕족의 사냥터였다.  광릉숲이 세조의 사냥터였던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곳에 왕족이 쉬어갈 건물들을 하나둘 짓기 시작해서 결국 베르사유 궁전에 버금가는 큰 궁전이 만들어진다. 

퐁텐블로 숲 인근에 바르비종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19세기 중반쯤 파리를 떠난 일단의 화가들이 이 마을에서 모여들었다. 그들은 매일 아침 그림 도구를 챙겨 가까운 퐁텐블로 숲이나 농민들이 일하고 있는 들판을 그렸고, 밤이면 모여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들을 '바르비종파'라고 한다. '만종'의 작가 밀레를 비롯해서 루소, 코로, 뒤프레, 디아즈, 트루아용, 도비니 등을 '바르비종의 일곱 별'로 불렀다.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농촌의 목가적인 풍경을 평화롭게 그려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작품을 좋아한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가면 특히 바르비종파 작품이 많은데,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 유명한 작품들을 보고는 크기도 작고 소박한 것에 놀랐다.

바르비종파 화가들을 언급한 이유는 그들이 야외에서 실물을 직접 보고 그리는 플래네리즘 화가들이라는 점이다. 플래네리즘(pleinairisme) 는 프랑스어로 충만하다, 가득 차다는 뜻의 플랭(plein)과 공기나 대기를 뜻하는 에르(air)를 합한 말로 풍부한 대기 즉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플래네리즘은 19세기 들어서 각국에서 다양하게 발전하는데 사실 당시 물감을 튜브에 넣는 기술이 개발되어 가능했던 것이다.

플래네리즘이야 말로 현장에서 그리는 어반스케치의 조상 격이라고 할 수 있다. 겸재 정선 선생님이 1700년 경부터 진경산수화로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으니, 그로부터 약 100년 후에 유럽 각국에서 현장 그림 유행이 시작된 것이다. 바르비종 파는 플래네리즘의 대표 사조이고 인상파도 그 전통을 이어간다.

그런데 일본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플래네리즘을 외광파(外光派)라고 번역한다. 언뜻 괜찮은 번역인 것 같은데 외광파를 검색하면 보통 이렇게 나온다.
   

외광파(外光派 , pleinairisme) : 태양광선 아래서 자연을 묘사한 화가들, 즉 실내 광선이 아닌 야외의 자연광선에 비추어진 자연의 밝은 색채 효과를 재현하기 위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 화파(畵派)의 총칭이다.


이러한 해석은 외광파의 원래 단어인 플래네리즘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한 용어인 외광파(外光派)를 설명한 것이라 어색하다. 실제로 플래네리즘 화가들은 대체로 자연광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야경을 그린 화가도 많고 밀레처럼 태양광을 그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화가도 많다.



외광파의 설명은 원어인 플래네리즘에 의거해서 태양광선보다는 야외에서 그린 화가들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래서 용어 번역이 어려운 것 같다. 플래네리즘의 정확한 번역은 야외파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용어는 좀 평범하게 느껴진다. 나 같으면 빽빽할 밀(密) 자에 공기 공(空) 자를 써서 밀공파(密空派)라고 번역했을 것 같다.



수목원이라는 보물창고




▲ 전나무 숲을 산책하던 관람객 두 분이 포즈를 취해주셨다. ⓒ 오창환


 
워낙 더운 날씨라 수목원에 관람객은 별로 없지만 전나무 숲길은 시원해서인지 산책하는 분들이 좀 있다. 스케치를 하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두 분이 벤치에 앉았다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를 보고 비켜주신다고 하는 걸 말렸다. 그분들을 모델로 그렸다. 그분들은 나이가 많다고 사양하셨지만 내가 그리면 다 20대가 되니까 걱정마시라고 하고 그림을 완성했다.
             


▲ 가방의 꽃무늬를 꽃으로 착각해 꿀을 빠는 나비. ⓒ 오창환


 
그림을 마무리하고 일어나려는데 나비 한 마리가 내 가방에 앉았다. 인구가 많으면 이상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듯이 여기 곤충이 워낙 많아서인지 약간 이상한 나비도 있나 보다. 내 스케치 가방에 꽃무늬 프린트가 있는데, 그 꽃무늬에 빨대를 대고 한 1분 가까이 비비다 날아간다.

국립수목원은 어반스케쳐들에게는 보물 창고인 것 같다. 가을에 단풍이 절정일 때 다른 스케쳐들과 함께와서 그리면 좋겠다. 오다가 멋진 계수나무를 봤는데 가을에는 계수나무를 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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