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그녀는 어느 학교재단의 이사진의 딸이라고 했다. 본인도 물론 그 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이 나라 저 나라로 언어연수를 핑계 삼아 놀러 다니다가, 서른 즈음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신부수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신부수업.... 2000년도 즈음에 그런 단어가 몹시 생소하긴 했지만, 대학원에 이름을 걸어 두고, 석사 논문을 휴학을 거듭하며 계속 미루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런 배경의 그녀가, 임원분의 낙하산으로 옆 부서로 입사했다. 내가 보기엔 그냥 회사를 여벌 삼아 다니려는 것 같았다. 결혼시장에서 백수는 좀 민망한 이름이니 말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서른 살의 딸을 아침저녁으로 데려다주고 데리러 왔다.
아침마다 회사 주차장에 엄마차에서 내리는 그녀를 보곤 했고, 그녀는 운전을 못했다.
그녀는 대표님의 비서로서, 주로 회사 내 통역 업무를 맡아서 일했는데, 나중에는 임원진과 중간관리자들을
본인 기준으로 분류해, 일부에게는 존중을, 일부에게는 무시를 일삼았다.
실세와 비실세를 자기 기준으로 분류해서, 비실세 상사가 내리는 오더는 처리하지 않기 시작했다.
오로지 대표님께만 웃는 얼굴로 순종할 뿐, 그 외에는 안하무인으로 처신했다.
점차 그녀의 오만함이 사내에 퍼지기 시작했고, 비실세 중간관리자들 사이에서 그녀의 닉네임은 "그년"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부장급 상사의 호출에도 그녀는 가지 않고 본인 자리에서 화장만 고친 일이 발생했다.
그 부장님이 너무 화가 나서 뛰어내려오셨고, 큰 소리로 질책하자 얼굴이 빨개진 그녀는 그대로 서 있을 뿐, 사과하지는 않았다. "So what? ' 이런 표정으로.
세상일은 돌고 돌아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는 법일까?
한 일 년쯤 지나서였을까? 그 부장님이 회사 큰 프로젝트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는 일이 생겼다.
대표님이 몇 번이나 직접 해외출장을 가시고 PT를 하시면서 공들이던 프로젝트를, 그 부장님이 본인 팀원들과 정말 치밀하게 대표님을 서포트해서 결국 계약을 따내게 된 것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회사는 별도 법인을 내 그 사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게 되고 해당 부장님은 그 법인의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계약이 체결되던 날, 대표님은 부장님을 불러서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하라고 하셨다.
크게 문제가 안 되신다면, 비서 OO 씨를 해고하고 새 비서를 뽑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젠 저도 대표가 되었으니, 비서가 제 업무도 일부 서포트해줄텐데, 저는 OO 씨가 매우 싫습니다.
대표님은 이유를 물으셨고, 부장님은 그간 OOO의 안하무인 인성과 사내에서의 무례한 행태를 그대로 다 말했다. 그렇게 비서 OOO의 퇴사처리가 조용히 결정되었고 모든 걸 부장님께 일임하였다.
다음 날, 부장님은 OOO가 출근하자 상황을 설명하고 그날로 퇴사를 명하고는, 전산팀 직원을 불러 그녀의 PC자료를 모두 백업했다.
의외로 그녀는 그 어떠한 항변도 하지 않고, 대표님과 본인을 꽂아 준 낙하산 임원에게만 조용히 인사를 한 뒤, 핸드백만을 챙겨 회사문을 나갔다.
나중에 그녀의 소식을 한번 들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대수술을 여러 번 하고, 다시 디자인으로 전공을 또 바꿔 새로운 대학에 다시 입학했다는.
연민이 들지 않았다. 다만, 공허한 제자리를 계속 도는 인생을 여전히 그녀가 살고 있구나 생각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