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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베스트 드레서, 워스트 드레서

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by 은수자


직장생활에서 옷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조직이나, 유난히 옷을 잘 입는 사람, 유난히 옷을 못 입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는 임원이었다. 우리 회사는 작은 상장 회사였지만 사옥이 있었고, 임원 세 분의 임원실도 작게 다 마련되어 있었다. 그는 아침마다 자기 방으로 출근하면서 늘 하던 루틴이 있었는데, 멋진 슈트를 입고, 손목에는 세련된 시계를 차고, 좋은 향수 냄새를 풍기며 조금 큰 소리로 "굿모닝" 하며 걸어 들어갔다.




당시 나는 남자들의 시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크게 관심도 없었지만, 그를 통해 남자들의 시계가 여자들의 명품백에 비견되는 사치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의 방에 결재서류를 들고 들어갈 때, 책장에는 시계 잡지들이 여러 권 꽂혀 있었고, 그는 꽤 여러 개의 시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 직원들 일부는 그의 시계 브랜드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고, 가격이 얼마인지도 가끔 내게 가십처럼 알려줬다.


그는 늘 단정한 슈트를 입었는데, 언제나 안에는 조끼까지 같이 입었다.

와이셔츠는 긴소매 기본 화이트만으로, 한여름에도 반팔 셔츠는 입지 않았다.

그린 계열의 타이를 자주 맸는데, 나는 그 색을 보면 일본 황족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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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핀터레스트

키도 크고 슬림했던 그는 핏이 좋았고, 바이어들은 남녀 모두 그를 좋아했다.

사내에서야 같이 일하면서 성격도 알게 되고, 가끔은 부딪히는 사람들도 트러블도 일어나기 마련이니, 호불호가 갈리었다. 그는 우리 팀 직속 상사여서, 많은 업무를 같이 했고, 상사가 베스트 드레스여서 좋은 점은 언제나 좋은 향기가 나는 근방에서 일한다는 거 정도였던 것 같다. 특별히 나와 잘 맞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크게 부딪히는 일도 없이 평온했다.



그는 늘 향수를 진하게 썼는데,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근할 때, 그가 이미 와 있는지 아닌지 구별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부분은 호불호가 있지만, 나는 언제나 '향수를 쓰는 쪽'을 찬성한다. 그게 설령 싸구려 향수라서 내 취향이 아니거나, 잘 쓸 줄 몰라 너무 진하게 써서 곤혹스럽다고 할지라도, 그건 뭐랄까 '남자로서 참 어려운 최선'을 해낸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14.2.jpg 출처 : 핀터레스트
그런 말이 있다.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화장을 지우는 여자는, 이루어내지 못할 일이 없다
남자가 향수로 자기를 마무리하고 집을 나선다는 것은, 그에 견줄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소한 일이긴 하지만 참 귀찮고 귀찮은 일인 건 분명하니까. 그래서 나는 늘 향수에는 좋은 점수를 준다. 그게 비싼 것이든 싸구려이든 간에.


회식 때, 누군가 우리 회사의 베스트 드레서, 워스트 드레서를 말한 적이 있었다.

베스트 드레서는 당연 그가 회자되었고, 문제는 워스트 드레서였는데, 농담 삼아 누군가가 지칭한 이름에 좌중 모두가 폭소를 터뜨리게 됐다. 늘 캐주얼한 복장을 고집하던 그 직원은 (업무가 혼자 하는 업무라 문제가 없었다) 막상 워스트 드레서로 이름이 호명되자, 화가 나서 회식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그다음 날 우리 모두는 그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해당 직원은 커피를 사 들고 가 그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하고 어렵게 화해했다.

14. 2.jpg 출처 : 핀터레스트

그날 이후, 워스트 드레서 직원은 조금씩 패션을 바꾸기 시작했다.

일단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왁스며 스타일링에 신경을 쓰고, 캐주얼한 코드는 그대로였지만 칼라를 맞춰서 입고, 무엇보다 니트/티 -----> 말끔하게 다린 셔츠로 바꾸어 입기 시작했다. 지나가면 좋은 스킨 냄새가 났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 그건 정형화된 패턴이 아닌
'나와 맞는 의류 코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았던 경험이다.

그 두 남자 모두가 멋졌기 때문이다.
하나는 원래부터, 하나는 그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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