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그는 40대 초반의 만년 과장이었다. 160을 조금 넘는 작은 키와, 약간은 겁먹은 듯한 소심한 표정으로 늘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결재서류 보고도, 출장준비도, 외근도. 그를 멀리서 봤을 때 받은 선입견은 늘 종종거린다는 느낌이었다.
해외영업팀에서 일하던 그는 바이어 미팅도 많았고, 해외출장이 매우 잦았는데, 미팅 후나 출장 후에는 여지없이 상사들에게 질책을 받았다. 주문은 많이 받았는데, 원가 계산을 해 보면 다 손해 보는 주문을 잔뜩 받아왔던 것이었다. 치밀한 계산 없이, 의욕만 많이 앞선 상태에서 바이어들의 무리한 가격 네고를 다 받아주는 그의 업무 스타일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공항에서 바로 달려와 피곤한 기색의 그가 상사들에게 질책받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다.
그는 동료들에 비해서 학벌 콤플렉스가 있었다. 어문, 상경이 대부분이었던 동료들 사이에, 그의 전공은 약간 거리가 있는 지리학이었고, 억센 사투리 억양이 가득 배인 거칠은 영어도 그의 촌스러움을 배가시켰다.
하지만, 그는 늘 열정이 있었다. 상사들의 질책이나, 동료들 간의 말없는 무시에도 크게 개의치 않고, 언제나 씩씩한 모습으로 늘 주어진 업무를 해 나갔다.
그러던 그와 코엑스 업무 관련 전시회를 같이 보러 가게 되었다. 큰 전시장을 다 돌아보고, 입구에 설치된 화려한 디자인의 주최 측 홍보 부스관 앞에 서게 되었는데, 그때 문득 그가 이렇게 말했다.
- 난 말이야, 나중에 꼭 이런 집을 살 거야,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아 살 거야, 그 집에서 -
돌아보니, 그 부스 벽면에는 아주 화려한 저택과 아름다운 홍보 모델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하는 그의 억양은 분명히 특별했다. 깊은 절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그 키 작은 촌스러운 남자가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인데, 그 꿈을 말하는 그 억양에는 힘찬 가능성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 그는 우리 파트너 회사의 8살 많은 연상의 매니저와 결혼했다. 일로 여러 번 만났을 파트너 회사에서 아마 업무 미팅을 하면서 좋은 인연으로 발전된 거 같았다. 8살이나 많은 그녀는, 그보다 키도 훨씬 컸고 경력도 훨씬 많았고, 직급도 연봉도 모두 높았다. 다만, 한번 결혼의 경험이 있어 쌍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던 워킹맘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가 그날 전시장에서 결의를 다지던 그 포스터 속의 아름다운 홍보 모델 같지는 않았지만, 당차고 활달한 매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초혼인 그가 아이가, 그것도 쌍둥이 아들이 있는 재혼 연상녀와 결혼하는 것에 많은 입방아를 해댔지만, 나는 왠지 무척 현명한 파트너를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나서, 그에게서 촌스러움은 많이 벗겨져 나갔고, 점점 키는 작지만 댄디한 스타일로 변화되었다.
누가 봐도, 세세히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스타일링, 나는 그가 참 좋은 아내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총각시절, 인천에서 강남까지 긴 출퇴근을 했던 그는, 결혼 후 아내의 송파구 삼전동 집으로 들어갔고, 훨씬 말끔한 모습으로 출근했다.
한 일 년쯤 후였을까? 그는 독립을 하겠다며 회사를 나갔다.
들리는 말로는, 아내가 많은 지원을 했고, 처가에서도 일부 지원을 하셨다고 들었다.
그는 잠실 근처에 사무실을 열고, 아내는 회사를 다니며 저녁에는 그의 사무실로 퇴근해 지원을 한다고 했다.
그의 퇴사를 보며, 상사들 중 그 누구도 그의 성공을 예상하지 않았다.
그 실력으로 나가서 얼마 못 버티고 망하겠지,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 모두가 그를 잊었다.
IMF가 나라를 휩쓴 그 후, 몇 년 있다가 그의 소식을 들었다.
그가 여의도 근처에 작은 사옥을 사고 승승장구, 수백억 매출의 CEO로 성공했다는 말이었다.
그는 IMF가 오기 직전, 달러환율이 800원 근처일 즈음 해외에 수입오더를 잔뜩 주문해 두었고,
그 해 가을 이후 환율이 폭발적으로 오르고 난 후, IMF가 터져 2000원에 육박하는 환율에 감히 그 누구도 수입할 엄두를 못 내던 때, 시장에는 그만이 물건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800원 환율로 계약해 둔 수입주문들이그해 가을부터 그의 창고에 그득하게 된 것이었다.
이제 시장에는, 그가 부르는 게 값인 상황.
그렇게 큰돈을 IMF 한해에 벌고, 그다음 해에 폭락한 작은 건물을 사옥으로 사들인 것이었다.
그는 무슨 선견지명이 있어서 그 해 여름에 그렇게 많은 수입주문을 해 둔 것이었을까?
그 옛날 상사에게 그렇게 야단맞던 특유의 "막무가내 같은 주문욕심"이 발휘된 게 아닐까?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두고 많은 억측을 했지만, 나는 그에겐 대운이 따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성공을 들었을 때, 그 옛날 그가 전시장에서 결의에 찬 어조로 읊조렸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난 말이야, 나중에 꼭 이런 집을 살 거야,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아 살 거야, 그 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