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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상사에게 받은 랑콤화장품 세트

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by 은수자

초년생 때의 나는 오로지 적금 모으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집도 어려웠지만, 내게는 돈을 모아 독립을 해서 나만의 공간을 갖고 살겠다는 강력한 목표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꿈이 있다면, 내게는 그게 공간이었다. 나는 내 공간이 갖고 싶었다. 간절하게.

20대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집을 사야겠다'라고 결심했다.


급여의 80% 정도는 적금을 들고, 나머지로 차비, 점심값을 해결하던 때였으니, 화장품도 저가만 옷도 보세옷만 골라서 잘 매치해서 입고 다녔다. 20대였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나 싶다. 젊음은 많은 것을 커버해 주기 마련이니까. 돈을 아끼느라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없으니, 그 시기의 나는 책을 참 많이 읽었다.

통근시간이 멀었기에 더 피곤했던 초년병 시절, 늘 종종거리며 살았다.


그때는, 나처럼 돈을 아끼며 사는 선배언니들도 있었지만, 옷과 구두 화장품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치장하는 언니들도 있었다. 그 당시, 우리 회사는 소공동 근처여서, 퇴근길이면 백화점과 상점들이 화려하게 펼쳐진 길을 가로질러 가야 했다. 이미 그때도, 그들은 명품 브랜드를 꽤 많이 알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몇몇 상사와 미국으로 해외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여자 선배 두 사람과 동행했는데, 모두 치장을 많이 하는 부류여서, 저녁시간이 되면 우리는 호텔 주변 쇼핑몰을 구경하곤 했다.

11..jpg 출처 : 핀터레스트

저녁시간, 우리는 쇼핑몰에 갔고 언니들은 수입화장품 브랜드를 샀다.

갤랑 색조화장품, 클라란스 영양크림, 랑콤 파운데이션, 샤넬 립스틱... 그런 것들을 쇼핑했던 것 같다.

안 산 사람은 나뿐이었다. 하지만 수입 화장품이 피부에 잘 맞지 않았던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고, 같이 즐겁게 구경하고 호텔로 돌아와, 상사들과 1층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oo만 쇼핑을 안 하더라고요. 영양크림 하나 들었다 놨다 하고는, 결국 안 샀어요.

얘기를 들은 상사는 웃기만 하셨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출국길에 공항 면세점에 몇몇이 들러 쇼핑을 더 했고, 선배 언니 하나는 작은 구찌백을 사서는 비행기 안에서 바닥에 내려놓지도 못한 채 신줏단지 모시듯 품에 안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웃음)

상사분들도 가족들에게 줄 약간의 선물을 사시는 것 같았다.

11. 1.jpg 출처 : 핀터레스트


한국으로 돌아온 며칠 후, 상사가 퇴근 즈음에 나를 부르시더니 작은 쇼핑백 하나를 주셨다.

살짝 보니, 랑콤 화장품 세트였다.


젊고 예쁠 때 다 해봐! 인생은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거든.
11. 2.jpg 출처 : 핀터레스트

마음이 찡했고, 감사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 충고가 와닿았다.

그래, 내가 아직 20대의 빛나는 청춘이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되었다.

랑콤은 내 피부엔 잘 맞지 않아서, 그 세트를 얼굴에 쓰지는 못했고, 핸드크림 / 바디크림으로 잘 썼다.


그 상사의 그 말은 나이가 들면서 가끔씩 떠오르는 좋은 조언이다.

돈과 현실에 매몰되어 나를 잃어버릴 때마다 감사한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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