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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카페사장이 된 심대리

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by 은수자

심대리는 새로 들어온 신입 직원이었다. 그녀는 키가 아주 커서 입사 때부터 눈에 확 띄는 마스크였다.

너무 마르고 예민해 보이는 인상이긴 했는데, 같이 일해 보니 실제로 그랬다.

일하면서 회사 내의 크고 작은 부조리들을 참지 못했고, 옳은 말이면 상사들에게도 크게 개의치 않고 회의에서 의사를 피력했다. 그것도 매우 간결하고 분명하게.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고 하던가?

그녀는 연못은 물이 너무 맑았고, 그 맑은 연못에 대해 다양한 물고기들이 다 불만을 성토했다.

깐깐하다, 고지식하다, 답답하다, 꽉 막혔다, 융통성 없다, 얼마 안 있어 그녀에게는 이런 평판이 붙었다.

하지만, 난 그녀가 싫지 않았다. 본인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했지만 늘 반듯하고 예의 있었고, 실제로 그녀가 제안한 몇몇 업무개선안들은 얼마간의 효율이 있었다. 그중 상당 부분은, 그 당시 회사들에 흔히 있던 '남녀 간의 일상적 차별' 관습에 대한 것으로서, 일부 상사들은 싫어하기도 했던 것들이었다.

12. 3.jpg 출처 : 핀터레스트

* 점심시간 중 회사 데스크 전화 : 여직원만 ---> 남녀 누구든 받기.

* 회사 탕비실 컵/유리잔 설거지 : 여직원 로테이션 ---> 수고비를 드리고 파트타임 청소를 외주.

* 상사들 / 임원실 책상 닦는 청소 : 여직원별 분담 ---> 남녀 상관없이 해당 팀의 부하직원들이 할 것.


대략 이런 것들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회사문화가 얼마나 올드했었는지 알겠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과 다 껄끄러워지던 그녀는, 급기야는 회사 내 거의 모든 사람들과 불편해졌고,

어느 날, 본인은 직장생활과는 전혀 안 맞는 사람인 거 같다며, 퇴사했다.

그리고는, 시내의 작은 앤틱숍에 직원으로 들어갔다.

12. 5.jpg 출처 : 핀터레스트

그녀는 앤틱숍에서 고객을 응대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면서, 사업 구상을 했다고 한다.

목돈이 없었던 그녀는, 작은 퇴직금 얼마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카페를 할까 고민하며, 일단 가벼운 파트타임을 구해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앤틱숍은 특성상, 매일매일 복잡하게 매출이 일어나는 구조가 아닌, 한 달에 고가 가구 몇 개를 파는 것이어서 여유가 있었고, 손님들은 매장에서 여러 가구를 천천히 둘러보고 나가며 커피머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자기네끼리 하곤 했다.


아하, 그녀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녀는 샵의 오너에게 사업을 제안했다. 그녀가 무임금으로 매장을 지키며 앤틱 가구를 판매해 주는 대신, 매장 한편에 작은 카페를 무료 샵인샵으로 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제안은 통했고, 2년 정도 그렇게 앤틱샵에서의 카페 사장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그녀는 돈을 모아, 근처 가정집 창고를 개조한 저렴한 매장을 임대해 정말 본인의 카페를 차렸다.

그 동네는 젊은 직장인들이 많아, 출퇴근 시간을 공략한 다양한 베이커리/브런치 메뉴들을 함께 만들어 팔았다고 했고, 그 매출이 꽤 성장하면서 카페는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나중에 우리는 그녀를 신마담이라 부르며 격려했고, 카페에도 여러 번 놀러 갔다.

회사에서 모두와 안 맞던 그녀는, 이제 자기와 맞는 진정한 일을 찾아서 정착한 것 같았다.

이제 행복하냐고 물으니, 그녀는 옅게 웃으며 답했다.


직장이든 카페든 마음을 비우고 해야 더 잘 된다는 것을 알게 됐어.
회사 다닐 때,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맘에 두고 했던 것 같아.


커피를 내리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평화가 짙게 묻어 있었다.

이제는 가벼워진 그 마음의 무게도 알 수 있었다.

심대리에서 심마담이 된 그녀의, 결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12..jpg 출처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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