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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아리 Mar 17. 2024

내가 나를 두려워하는 이유

기억이 배신할 때



며칠 전 겪은 황당하고 슬픈 이야기.

캄캄한 새벽 난 현관문 앞에서

겉으론 멀쩡한데 순간

바보가 됨을 경험한다.



새벽 공기는 차가운데

몸을 집안에 들이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 봐야 했다.




잘도 누르고 드나들던 비밀번호가 도대체 생각이 나질 않아서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두려움이 앞선다.

나와는 먼 이야기고

상관없을 것만 같았던

아주 조심스러운 생각 혹시

“초기치매증상?”



아니길 간절히 바라면서     

“이건가”하고 눌러보고 안 되니,

또다시 “저건가”기대를 하고 몇 번을

눌러보지만



돌아오는 건 허탕과 요란한 심술로 어둠을

깨우기에 차고도 넘치는 에러음뿐이었다.



역시 현관문은 내 기억을

테스트라도 해보는 듯 주는 건

절망뿐, 쉽사리 열림을

허용하지 않는다.



두려움이 전신을 타고 흐른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송송 올라오고 있고,  

무엇보다 문을 열어줄 사람이

집안엔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나의 두려움은 어둠을

밀어내지 못했다.



비밀번호를 알려줄 사람은 남편인데

며칠 전 여행을 떠나,

나 혼자 지내고 있던 터이다.



두려움이 더 컸던 이유는

아침이 오기 전엔

집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그 맘 줄이려

남편한테 전화를 하려 하니

“흑흑” 또 생각지도 않은

난감한 상황에 부딪히고 만다.

휴대폰 글씨와 숫자가 보이질 않는다

노안으로 돋보기가 필수인데

집안에 두고 나온 거다.



도대체 순조롭게

진행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남편 폰 번호와

또 최근 통화기록에서

남편이라는 두 글자를

찾기 위한 간절한 마음으로

두 눈을 손가락으로

말도 안 되게 추켜올려보며

별짓을 다해 애를 써 보지만

내 모습만 이상할 뿐,

더 잘 보이는 일은 없었다.  



이러기를 몇 번 끝에

어렵게 읽어내기는 했으나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닌 거다.

늦게까지 자는 남편은

휴대폰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습관을 잘 알고 있기에 그렇다.



밤에는 휴대폰도 자야 한다며 재운다.

(남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듯 문제는, 산 넘어 산이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전화는 해 보지만 기대는 안 한다.

남편의 휴대폰도 함께 자고 있을 테니까!

과연 “받을지, 안 받을지”

마음이 타 들어간다.



신호음이 간다 몇 초 후

나의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남편의 목소리를 받았다



왜 그렇게 반갑던지

37년을 살고 있지만 오늘처럼

그 목소리가 반가웠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휴! 천만다행”

남편은 놀라는 목소리다.

우린 동시에 서로가 놀란다.



나는, 그 시간에 전화를 받는

남편에 놀라고,

남편 역시 새벽에 내 전화에 놀라고



“뭔 일여 이 시간에"


"밤새 집안 정리하고 분리수거하러

밖에 나왔는데 비밀번호를 잃어버려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러고 있어요!”


나도 묻는다.



“당신은 이 시간 어찌 전화를 다 받는 거요?”



다행히도 여행지를 옮기려면

서둘러야 해서 일찍 일어났다한다.



이렇게 남편을 통해서 번호를 알아내

현관문을 열게 됐고

캄캄한 밤 새벽에 한바탕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일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두려움에, 추위에

냉기에 얼어있는 몸을

따뜻한 집안으로 들였다.



눈물이 났다.



내 기억으로 해결을 못하고,

끝내 3자에 도움을

받았다는 거에 자존감이

땅에 떨어지는 탄식의 눈물이다.



아, 슬프다!

맘은 청춘인데 이젠 육신의 기능들이

하나 둘 퇴화됨에 슬픈 거다.

자연스러운 현상 일 텐데 슬픔으로

다가오는 건, 뭘까!  



요즘 들어선 전에 없던 일들을

자주 경험한다.

이처럼 기억력 쇠퇴에 더해 점점 더

침침해지는 시력에 거기에

며칠 전부턴 무릎아픔까지 합세했다.



삶의 질이 떨어진다.

아주 한꺼번에 몰아서

경험을 하게 됐다

결혼생활 37년, 아파서 자리에

누워 본 적이 없는 나였는데...



그래서 지인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았던 거고,

그래서일까?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천천히 받아들이려 한다.

그렇지만, 내가 나를 두려워하는 것

또 한 사실이다.



언제 어떻게 어떤 일로 이보다 더한

난처함을 겪게 될지 몰라서다.

문밖을 나갈 때는 돋보기와

비밀번호를 꼭 휴대폰에 메모해서  

휴대하고 다닐 것을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이 같은 곤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큰 경험을 했으니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만들지 말자!



세상사가 다 내 일인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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