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지쳐 더러 위로가 필요했던 날
손금을 들여다보듯이 돌계단에 주저앉아
혼자 마을을 내려다 보았을 때
그 오래된 골목길 층층이 널린
흰색의 빨래들은
가을 운동회의 깃발마냥 푸른빛으로 펄럭거렸고
시골 부엌 불 꺼진 아궁이처럼
지난여름의 온기가 희미하게 버티는
교회 지붕 위에는 비둘기 몇 마리가 쉬고 있었다
해마다 계절이 변하는 것을
아쉬워 말자
아쉬움 지나면 또 기다려 지듯이
여름 한 철 매미들 울던
그 높은 나무의 가지마다
나뭇잎들 빛 바랜 엽서처럼 매달려
하루 종일 가을바람에 재잘거리고
어느날 훌쩍
바람 우체부의 투명한 가방에 담기면
그리운 사연들 온 세상에 전해지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