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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by 오스만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한복음 19:26 -27


함박눈이 쏟아지던 토요일 오후였어요. 행정반 옆 미루나무에 걸린 낡은 스피커에서 '병영의 꽃다발'이라는 국군방송이 흘러 나오고 있었죠. 이정석의 '첫 눈이 온다구요'와 사랑과 영혼(Ghost)의 OST로 사용 되었다며 'Unchained Melody'가 방송을 타고 있었어요. 사무치는 그리움이 눈보라를 타고 쏟아져 내리던 날 당신이 면회를 오셨어요. 엄마.


이미 더 이상 나이만으로 위안을 삼지 못하는 제가 당신을 부를 때 가장 편안한 호칭은 '엄마'입니다. 왠지 엄마하고 불러 보면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그 품 속에 안긴채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 들곤 하죠. 어릴적 비가 내리던 날 오후 당신의 품에서 낮잠을 자다 깨기라도 하면 왠지 적막한 공기를 마주하고 다시 당신의 품안으로 파고 들며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곤 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당신은 언제나 저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 주셨죠.


눈으로 도로가 막혀 2시간 거리를 5시간 이상 걸려 면회를 오신 당신은 "오늘 같은 날 뭣하러 면회를 오셨냐"며 눈을 홀기는 제 손을 잡으시며 "춥제?"하는 말과 함께 빙그레 웃으시다 추위로 바알갛게 변한 제 손을 잡아 주신 후 야전 상의 위에 쌓인 눈을 툭.툭 털어 내셨죠. 5월 개나리가 만개한 날씨에도 눈발이 날리던 곳이었어요. 그 곳은. 그 날 P시에서 당신이 사 주셨던 한 그릇의 따끈한 콩나물 국밥 그 맛을 여전히 잊을 수 없군요.


이듬 해 여름이 다가 올 무렵 사단 신문에 기고한 제 글이 당선되어 포상휴가를 받게 되었어요.

울타리 너머 인삼밭에
비가 내린다.
현재 시각 21시 38분 만큼의 어둠이
사위를 감추이고 있는데
슬레이트 지붕 위를 퉁기는
빗방울 소리가
희미한 파장을 울어내면
오늘따라 유난히 어머니 당신은
먼 곳에 계신다.

초소에서 1991년.

첫 휴가였고 침묵의 동굴에서 빛의 공간으로 나선다는 설레임이 가득했던 시간이었죠. 상봉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다시 지하철을 갈아 타고 한강이 바라 보이는 노량진 철교를 지나 집으로 향하던 그 허공에 뜬 발걸음의 느낌이 아스라이 떠 오르는 군요. 먼 곳에 계신다는 당신을 비로소 가까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죠.


사춘기를 지나며 아들이라는 핑계로 살갑게 대해 드리지 못한것이 못내 죄송스럽지만 천성이 그런걸 어쩌겠어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피가 흐르는걸 말이에요. 2천년 전 어머니 마리아를 대하던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말은 "누가 나의 어머니냐" 하셨지만 마음 속에는 모친인 마리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감추고 계셨을 거에요. 임종의 순간 그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시다." 하셨던 말씀 속에 그 심중이 절절이 녹아 있는걸 알 수 있지요. 어쩌면'겟세마네'동산에서 피 같은 땀을 흘리시며 기도를 하실 때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목이 메어 울음을 터트리셨을지도 모를 일이죠.


얼마 전에 '주세페 토르나토레'감독의 '시네마 천국'을 다시 보았어요. 어린 토토와 알프레도 간의 우정이나 청년이 되어 버린 토토가 엘레나를 기다리는 마음을 이전 기억이 가지고 있었다면 이 번에는 알프레도의 권유로 고향 마을을 30여년 간 떠나 있던 '살바토레(토토)'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 버린 어머니에게 그의 궁금증을 묻던 대사가 가슴에 와 닿더군요.

"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엄격하셨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무척 아름다운 여성이셨는데 아버지의 부재 이후 왜 여자로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시지 않으셨어요?"하는 물음에 그의 어머니는

"너희가 내 곁에 있는 걸로 나는 족 했는걸." 하더군요.


어린 시절 화장을 곱게 하시고 함께 가족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당신은 큰 키에 무척 멋장이셨어요. 괜히 어깨가 으쓱한 날도 많았죠. "우리 엄마에요." 하는 어린 마음이었을까요? 3남매의 막내로 태어 나 일찍 외할머니를 여의시고 엄한 외할아버지 슬하에서 막내둥이의 투정 한 번 제대로 못하셨다는 당신은 결혼식 때는 그나마 외할아버지도 계시지 않아 얼마나 쓸쓸한 결혼식이 되었을지요? 어린시절 가져 보지 못했던 궁금증을 중년의 살바토레처럼 저 역시 생각해 보게 되는 나이가 되었군요. 학교를 마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세상일에 쫓기 듯이 살아 가면서 엄마. 당신은 저 까마득한 옛날, 5월 눈 내리던 그 시절의 제가 비 내리던 날 밤 초소에서 느꼈 듯이 그동안 너무 멀리 계셨어요.


철 없던 시절 약속 하시던 오뎅 하나에 온통 정신이 팔려 당신을 따라 나섰던 재래시장 여기 저기서 당신의 치맛자락만 끌어 당기던 제가 오늘은 그리워 '엄마'하고 불러 보고 싶네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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