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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나일강을 건너다

루비콘 강을 건너는 그 남자의 아침

by 오스만

기도를 독려하는 아잔(이슬람 모스크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행위) 소리에 새벽잠이 설핏 깨어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섬 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으며 집 밖을 나서자 카이로는 깊은 잠에 취한 듯 안개에 잠겨 있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의 생활 3년 8개월,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때의 생소함들이 무덤덤하게 다가오기 시작할 무렵 아내는 나와는 달리 점점 더 힘들어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한결 좋아지겠거니 했던 내 근거 없는 낙관과는 달리 아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점점 더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 어느새 나와도 좀처럼 말을 섞으려 들지 않는 서먹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아 시내 방향으로 행선지를 알렸다. 하얀색의 택시 기사는 입에 문 담배의 불을 끄지 않은 채 미터기의 버튼을 지그시 누른 후 백미러를 통해 뒷 좌석에 앉은 나를 계속 흘끔거리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의 한산함 속에서 택시는 안개를 뚫고 도로 위를 빠르게 질주했고 드문 드문 불을 켜고 있는 길가의 풍경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다.


창 밖으로 눈길을 고정하고 생각은 다른 곳에 가 있는 사이 택시 기사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씨니 (중국인)?"

"라(아니) 꾸리 (코리안)..."

내 대답에 택시 기사가 환하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따입 꾸리아... (코리아 좋은 나라죠).... 아라비야 디 마쓰누아 빗샤리카 꾸리야... 미야 미야(이 차가 코리아 회사에서 만든 차인데... 성능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택시 기사는 다시 담뱃불을 붙이며 엄지를 들어 보이더니 내게도 담배 한 가치를 권했고 나는 창문을 반쯤 내리고 그가 건네는 담배를 받아 물고는 불을 붙여 창밖을 향해 연기를 훅 내뱉었다.


어느덧 50대 중반의 나이. 두 달 전 세 살 연하의 아내가 자신의 고민을 어렵게 털어놓았을 때 나는 사실 놀랐다기보다는 체념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옳았을 것이다. 어쩌면 사뭇 그녀의 고백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집트 카이로로 떠나오기 1년 전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던 아들 현석의 죽음 앞에서 아내는 오열했고 하나뿐인 아들의 아비 된 자로서 난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절망했고 또 스스로를 책망했다. 반듯했던 아이 그래서 더 가슴속에 깊숙이 묻어야만 했던 그 아이.


택시가 시내 '타흐리르' 광장을 지나 나일강을 잇는 다리 위를 미끌어 지듯이 달리는 동안에 나는 차의 창문을 올리고 주머니 속의 지갑을 꺼내 택시 미터기를 확인했다.

65 파운드. 100 파운드 지폐를 꺼내 '도끼'구역의 영화관 앞에 차를 세워 달라고 부탁하며 나머지는 팁이라 말하자 택시 기사는 이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꾸리 미야 미야 알라히 바락 픽.. (코리안은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택시가 멀리 떠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극장의 모퉁이에 있는 작은 찻집을 발견하고 나이 든 노인이 건네는 메뉴판을 받아 터키식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어 불을 붙이고 거리를 바라보았다. 안갯속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고 요란한 차량의 경적 소리가 여느 때와 같이 술렁거리는 카이로의 아침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구 1,800만의 도시. 이집트 카이로.


손목시계를 확인하자 9시 25분이었다. 테이블 위에 20 파운드를 남겨 두고 노인에게 고맙다는 뜻의 목례를 가볍게 한 후 모퉁이로 통하는 골목길을 걸어 천천히 방향을 잡아 걸었다. 안개가 어느새 걷히고 있었다.


골목을 벗어나자 태극기가 게양된 건물이 보였고 그 건물의 좌측 끝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자 이내 문이 열렸다. 안내를 맡은 이집트인 여자가 한국말로 무슨 용건인지를 물었고 나는 대사관 영사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여자는 전화기를 들어 나를 힐끗 한 번 쳐다 보고는 누군가와 통화했고 잠시 후 젊은 한국 남자 하나가 문을 열고 나와 내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로 영사님을 찾아오셨습니까?"


경상도 억양이 있는 남자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내가 일어나 대답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재 리집트 대사 리명석과 안해 정수경... 대한민국에 망명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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