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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n 17. 2024

그 고사리손으로

금요일이야.

한낮의 더위가 8월을 방불케 하는구나.

진짜 여름이 오면 어찌 살라고.

안마는 육체노동이라서 더우면 학생들 반응이 즉각 나타나.

땀도 많이 흘리고.

선풍기와 에어컨을 동원하고, 시원한 음료며 얼음을 쟁여두어도 사실 하루에 두 명 이상 하기가 쉽지 않아.

우리 졸업생들도 그렇고 안마업종에서 일하는 지인들 보면 영락없이 어깨며 무릎이 성치 않거든.

지금 누나가 지도하는 학생은 힘이 너무 좋아 ‘황소안마’라는 별명을 붙여줬어.

나이로는 경로당 안마 대상자인데, 오히려 젊은이들 어깨며 허리 근육을 파워 있게 풀어.

언변이며 인상도 좋아서 우리 학교 임상실 손님들에게 인기짱이라니까.

‘안마’를 좋아하는 학생들은 굳이 연습을 당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가족이며 지인들을 청해서 끊임없이 손으로 감각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즐기는 놈 있다고 하잖아.

높낮이 조절되고 페이스홀 있는 안마베드 구매할 준비 끝내놓고 벌써부터 본인 안방을 비워둔 기운찬 예비 안마사구나.

한편 이제 갓 취업한 쌍둥이 자매 안마사 사연은 이래.

언니도 동생도 손이 그야말로 고사리야.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자매가 똑같이 작아.

옷까지 같은 걸로 입고 다녀서 외관상으로는 쉽게 구분할 수 없는 데칼코마니.

처음에는 안마할 생각이 없다고 했어.

자연 수업에도 관심이 없었지.

둘이서 유튜브 채널 운영할 거라고.

마냥 까르르 웃고 재잘거리는 양이 해맑은 초등학생 같았는데, 2학년 취업반이 되는 순간 돌변하더라.

누나가 수업 시간에 자매를 만난 것은 2학년, 그러니까 졸업반이 되어서였어.

솔직히 덩치도 너무 작고 1학년 때 공부를 안 했으니 근육이며 뼈며 기초 지식이 부실하잖아.

누나는 1차적으로 양적 팽창을 강조해.

동전의 양면처럼 그 뒤에 질적 발전이 따라온다고 생각하니까.

경험상 그렇더라고.

1년 동안 자매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둘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어.

언니는 차분해. 책을 좋아하고 말이 없어.

주변 상황에 별 관심 없이 틈만 나면 소설을 보는 거야.

나랑 비슷하지.

그런데, 동생은 씩씩한 행동파.

말 잘하고 적극적이고, 무엇보다 현실적인 거지.

동생이 안마사로 취업하고 싶다고 결연히 선포를 하더니, 수업 이외에도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공부를 시작하더라.

현장실습도 꼭 나가고 싶다 하여 담당교사인 나도 바빴지.

노동인권이다 안전교육이다 성폭력예방교육이다 직장 내 윤리교육이다 추수 지도까지 챙겨야 할 것이 많았거든.

우여곡절 끝에 현장실습 나가는 날, 동생이 말했어.

“제가 돈 벌어서 월세도 내고 이사도 할 거예요.

언니가 좀 답답할 수도 있어요. 책만 보거든요.”

답답할 수도 있다는 말. 

걱정 섞인 그 말이 내 뇌리에 사정없이 꽂혔어.

‘나도 그런데’

우리 가족을 비롯해서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실은 나를 엄청 답답해하잖아.

특히, 세상 부지런하고 빠른 형은….

 정식 자격증 받고 현장실습 나갔던 업체에 취업한 동생은 어엿한 직원으로 출장도 나간대.

언니도 경로당에서 어르신들 안마해 드리며 월급 받는 시민이구나.

 예쁘고 기특한 자매가 예고도 없이 오늘 학교를 찾은 거야.

깜짝 놀랐지.

매년 열리는 ‘한중일 시각장애인 테니스대회’에 참가한다고, 연습이 있어 왔다며 글쎄 복숭아를 한 상자 사 들고 온 거 있지.

그 고사리손으로 아픈 몸들 주물러 번 돈인 거야.

하필 시에서 수도 공사를 한다고 하루 종일 건물 전체 단수가 되는 바람에 짠한 그 복숭아 맛도 못 보여주고 보냈네.

졸업생들 만날 때마다 맥없이 마음이 먹먹해.

미안한 것만 떠오르고.

과거는 항상 부끄럽잖아.

맑고 밝은 언니들 덕에 고단했던 한 주 ‘고마움’으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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