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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보다 무서운 Don't

by 밀도


1교시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딸아이 학교 알림장 앱에 갑작스럽게 조기 하교 통보 공지가 떴다. 5학년 3반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관계로 부득이 전원 조기 하교하여 자가 키트 검사를 요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남편이 주간 근무였고 친정어머니도 출타 중이셨다. 아이는 제법 커서 혼자 하교는 물론 점심까지 해결하며 태평했다. 내가 조퇴를 한들 자가 키트 검사를 해줄 수 없는 형편이니 남편이 긴급 반차를 낼 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당일에는 음성이 나왔다. 일단 안심했지만 코앞까지 코로나가 다가와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 올 것이 왔다. 유주 체온이 38도를 넘어가더니 9.2를 왔다 갔다 했다. 해열제를 먹이고, 이튿날 아침 세 식구 나란히 지정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유주만 양성이었다. 아이가 뚫리고 나니 긴장이 탁 풀렸다. 3년이 다 되도록 자나 깨나 유주 감염을 염려했다. 3차까지 백신을 맞은 어른들은 견디면 그만이었으나 아이는 지켜야 했다. 싱겁게 골문이 열렸다. 다행히 이틀 열이 조금 났고, 그 이상 증세는 없었다. 시시각각 체온을 체크하고 담임선생님께 제출할 검사 일지를 작성하고, 안색을 살피고 틈틈이 수학 진도까지 빼며 아빠는 분주했다. 중증장애인이나 초등학생이 격리될 경우 보호자가 공동 격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 남편이 공가를 내고 간호할 수 있었다. 곧이어 남편도 기침을 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집안에서 조심을 한다고 하지만 둘이나 유증상인 상황에서 나만 건재할리 만무했다. 감염취약자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일터에 혹여라도 내가 감염원이 될까 두려웠다. 신속항원검사에 자가키트, PCR검사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코를 찔러대니 차라리 양성 반응이 기다려질 지경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유주 확진 나흘 후 나와 남편도 확진됐다.

오한이 들면서 열이 올랐다. 기관지에 미세 먼지가 꽉 들어찬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면서 기침이 나왔다. 숨소리에도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가 섞였다. 사정없이 입안이 말랐다. 혓바닥이 마취 주사를 맞은 것처럼 얼얼하고 뻣뻣했다. 목이 꽉 잠겨서 목소리가 안 나오고, 귀가 먹먹했다. 머리가 아프고 코와 눈이 시큰거렸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서 확진된 동생은 하루 종일 근육통 때문에 죽을 고생을 했다고 했지만 이쪽 근육은 무사했다. 몸 사리며 외출 삼가고 조심하던 우리가 먼저 격리됐다는 낭보에 캠핑무사 막내 제부가 답했다. 현란한 술병 인증숏과 함께 다름 아닌 알코올소독이 본인의 건강비결이었노라고. 한겨울 설산도 가뿐하게 정복했다. 야간산행을 즐기며 온몸으로 흡수한 숲의 정기가 그의 세포를 옹골지게 다져놓은 모양이었다. 비대면 처방받은 약을 하루 세 번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3일 치를 다 먹고 나니 기침이 잦아들었다. 두통은 집에 갇혀 있어 생기는 증상이었다. 잔소리 대마왕 남편과 꼼짝없이 7일을 한 공간에 상주하려니 당장 코로나가 문제가 아니었다.

남편은 부정 언어를 주로 쓴다. “Don't.”로 점철된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슬금슬금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 남자와 10년 넘는 세월을 살면서 뒤늦게 사춘기 아이들의 반항심을 이해했다. 코로나는 남편 “Don't.”에 아주 타당하면서도 편리한 명분이 되어주었다. “수필반·교회·동생집 가지 마라. 인상 쓰지 마라. 정색하면서 말하지 마라. 많이 먹지 마라. 누워있지 마라. 구시렁대지 마라.” 등 등. 일리 있었지만 그의 말이라서 듣기 싫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Don't.”에 하도 짜증이 나서 “왜 숨도 쉬지 말라고 하지.” 쏘아붙이고 소심하게 통쾌해했다.

설악산 출렁다리를 건너본 적이 있는가? “흔들지 마시오.”라는 경고문 앞에서 굳이 발을 구르며 다리를 요동치게 해 보는 사람들의 장난 같은 몸짓이 재미있었다. 무슨 악취미인지는 몰라도 난 그랬다. 설거지를 하려던 참인데 남편이 설거지하라고 말하면 울컥 짜증이 났다.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남편이 걱정되어 안마라도 해주려던 참에 그가 팔다리어깨허리 할거 없이 요기조기가 아프다고 푸념할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에게로 가던 마음이 싹 가셨다. ‘얼마든지 기분 좋게 내 의지로 할 수도 있으련만….’

시도 때도 없는 그의 말 한마디가 내 선의를 일순 해체해 버리는 느낌이 징그러웠다. 똑같은 행위인데도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닌 너의 주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왜 그렇게 싫었을까?

남편의 “Don't.”를 다름 아닌 내가 유주에게 연발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 모골이 송연했다. “밥 다 안 먹으면 라면 없어.”를 “반찬 골고루 먹고 라면 먹자.”로 바꾸어 말해본들 아이 귀에는 이미 잔소리다. 인기 가수 아이유와 임슬옹은 일찍이 이런 노래를 불렀다. “머리 아닌 가슴으로 하는 이야기. 네가 싫다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 그만하자. 그만하자.”

음치 엄마가 심혈을 기울여서 노래를 불러대도 유주는 끄떡없다. 남편의 Don't가 지긋지긋하지만, 구구절절 옳은 잔소리 노래 가사를 묵상하며 그의 남모를 수고와 고충을 짐작해 본다. 단언컨대 내가 눈 밝은 사람이었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장애인 배우자의 삶. 끝까지 나는 알 수 없을 그 남자 몫의 고독 혹은 책무 앞에 그깟 Don't가 대수랴.

7일 격리가 해제됐다. 세 식구 각자 바쁜 아침이다. 익숙한 평일 출근이 반갑다.

“유주 양치 똑바로 해. 양말 신었어? 머리 빗었어? 지갑이랑 휴대폰 챙겼지? 마스크 하고 신발 신자.” 코로나도 Don't도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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