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개학을 했어.
어젯밤 유주에게 물었거든.
“유주 방학 동안 좋았던 것 베스트 3이 뭐야?”
“응, 12시에 자고, 12시에 일어난 거밖에 없는데.”
“헉, 혹시 그게 전부?”’
‘아니 어머니가 뼈 빠지게 벌어서 비행기를 태웠거늘 고작.
그나저나 소녀 2학기 학원 스케줄을 어떻게 조정해야 한단 말이니.
8월부터 태권도는 부활시켰으니 어떻게든 영어, 수학 일정을 맞춰야 하는데.
운동하기 위해 영수 시간을 우겨 넣는 이 상황이 영….
멀건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 마당에 유주 할머니께서 삼겹살을 구워 우리 집까지 가지고 오신 거야.
인간적으로 밥값은 하고 살아야 하는 법.
배도 부르겠다 모처럼 엄마 안마를 시작했지.
어깨며 허리가 다 돌덩이야.
실로 오랜만에 판을 벌린 건데….
시끄럽지만 묘하게 내 마음을 안심시키는 엄마 코 고는 소리 들으며 누나도 깜빡 잠들었다가 새벽에 또 깨고 말았네.
초저녁잠을 담보로 한 새벽 독서 진짜 꿀맛이거든.
오늘은 박완서 선생님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었어.
“몽롱한 정신 때문인지 서울이란 도시가 온통 엄청난 인구와 차량이 내뿜는 뜨겁고 탁한 숨결이 모여서 된 두꺼운 지붕을 쓰고 있는 거대한 터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빠져나가 맑은 공기를 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맑은 공기에 대한 갈증으로 더위 먹은 짐승처럼 헐떡였다.
다음 날 덮어놓고 고속버스표를 샀다. 별다른 여행 계획 없이 될 수 있는 대로 서울에서 멀리 떠날 생각만 했다. 그러나 사전 지식 없이 떠났기 때문에 당도한 곳은 교통이 편한 국립공원일 수밖에 없었다. 첩첩한 산과 짙은 숲이 반가웠다. 물소리가 상쾌한 골짜기에 들어서자 싱그러운 수풀 냄새 대신 불고기 냄새가 진동을 했다. 불고기 굽는 연기가 골짜기에 푸르게 서려 저녁나절의 시골 마을을 연상시켰다.”
‘나도 이렇게 훌쩍 떠날 수 있으면….’
“다음 날 산을 오르면서 보니 겹겹이 사람이요 첩첩이 쓰레기였다. 산은 사람과 도시의 쓰레기에 시달리다 못해 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도시의 쓰레기로 들이 피폐하고 산이 의연한 기상(氣象)과 정기(精氣)를 잃으면 장차 어떻게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으며 어떻게 늠름한 건아(健兒)인들 키울 수 있겠는가. 들을 기름지게, 산을 청청하게, 나무들을 정정하게, 시냇물에선 물고기가 놀게, 숲에선 새들과 풀벌레가 노래 부르게 우리 국토의 건강을 지켜 주는 일이야말로 화끈할 것 없지만 정말 해야 할 나라 사랑이란 생각이 절절해지는 여행이었다.”
문장이 긴데도 꼿꼿하잖아.
그녀 특유의 솔직함이 보석 같아라.
음소 하나까지 진실의 결정체.
하얀 내 눈에도 돋보여.
눈부시단 말이야.
누나 평생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강산아, 힘 좀 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