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지금 드라마가 아니라 목욕하라고 여기 앉아 있는 거야.”
“알아.”
한 시간이 다 되도록 소녀 물속에서 꼼짝을 안 해.
교회 마치고 친구들과 마라탕 회동까지 넉넉하게 놀고 들어오셨으면 스스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니니?
분명히 어머니 주말 미션에 딸 목욕이 있었고 유주도 확인한 사항이었거늘.
7시가 넘어 어슬렁거리며 귀가해서는 귀찮은지 목욕을 안 하시겠대.
아니나 달라.
동글동글 향기로운 입욕제에 단박 낚이셨지.
무슨 하녀처럼 욕조 청소해 놓고 물 받아 공주를 모신 거야.
음악이라도 틀어줄까 싶어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어느새 태블릿을 보고 있잖아.
“그만 봐. ”
태블릿을 들고 나오는 어머니를 다급하게 막아서더니,
“왜 안 되는데?”
아주 독립투사 나셨더라.
한 번은 못 이기는 척 두고 나왔지만, 세월아 네월아 드라마에만 빠져 있는 녀석에게 울컥 화가 치밀었어.
“적당히 좀 해. 도대체 씻을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드라마 보면서 목욕하는 게 아니라 목욕하면서 드라마 보는 거랬잖아.”
“왜 급발진이야! 알았어. 알았다고.”
주일을 맞아 예배당에 갔어.
텔레비전 속에서 정치인들 싸우는 장면도 신물이 나는 판인데, 부끄럽게도 누나 교회 중진들이 벌써 몇 년째 대치 상태로구나.
내부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그간 이 문제가 기독교 신문에 공론화되기도 했고, 제법 심각한 사안으로 지리멸렬하게 전개되던 참이었어.
세상에!
“야 누구보고 마귀래? 이 XX 같은 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로비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경찰차가 두 대나와 있다고 했어.
건물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욕설과 폭언을….
강산아, 참아 입밖으로는 내뱉지 못했지만, 오늘만큼은 누나도 그 싸움꾼들에게 시원하게 육두문자 한 번 날려주고 싶더라.
1층이 바로 중고등부에 영아부 학생들 예배실이야.
그 앞에서 보란 듯이, 학식 있는 어른들이 믿을 수 없는 추태를, 그것도 라이브로….
거룩한 주일, 성전에서 수준 미달 급발진이 웬 말이냐고.
20년을 다닌 교회인데, 어떡하면 좋겠니?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3대가 출석하는 가정도 많았는데….
서로를 ‘마귀’라 하는 거 같았어.
하나님 이 기막힌 꼴 내려다보시면서 과연 무슨 생각하실까?
저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이 다르지 않을 텐데, 이 소도시에서는 내로라하는 유지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저러고 싶을까?
무엇을 위해서 어린 학생들 앞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볼썽 사나운 꼴로 목청을 높여댈까?
강산아, 누나가 유주에게 화낸 것은 인간적으로 참고 참다가 살짝….
그러니까 나의 급발진과 저들의 급발진이 다르다는 건 아닌데….
여하튼 ‘급발진’이라 함은 필시 그 끝이 좋을 수 없었음이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