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 먹다 더위까지

by 밀도

강산아 그 동네도 이렇게 덥니?

처서가 지났다는데 여기 아래 세상은 절기가 무색하도록 습하고 덥구나.

안 그래도 텐션이 마이너스인 누나가 요 며칠 중력에 100% 순종하여 직장에 있을 때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낸 거야.

유주 눈을 생각해서라도 활기찬 엄마여야 할진대.

우리 따님?

여전히 바쁘시지.

주말에도 찬양대 연습이다 교회 반 모임이다 약속이 많으셔.

밝고 명랑한 딸 기운에 게으른 어미 근근이 힘을 얻는단다.

강산이는 더위 안 먹고 잘 지내고 있지?

누나는 풍신난 저질 체력이 바닥을 드러냄에 따라 늪과 같은 귀차니즘에 빠져 버렸어.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먹는 것마저 귀찮아서 저녁을 거의 안 먹는다는 사실.

그래도 살은 빠지는 것 같지 않네.

50 되기 전에 근력을 좀 단련시켜 두어야 건강 관리가 수월하다고들 하는데, 하루하루 맥없이 세월만 축내는구나.

한가한 토요일, 집에서 『여행스케치』라는 월간지를 들었어.

8월에는 어디가 좋나, 사람들은 어디로 놀러 가나, 이 지독한 여름을 어떻게 이겨내나 궁금하잖아.

발 아닌 귀로 하는 여행이랄까.

‘부산 광안리 야경이 멋진가 보구나.

와인 파티에 광안대교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호캉스.

으음, 좋긴 하겠으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야경 따위 감흥이 없어요.

부모님 보내드리면 참 좋겠는데, 두 분이서 시설 이용이 가능하실지….’

누나 늘 마음은 효녀 심청 뺨을 치는데, 몸은 좀….

아주 머리로는 만리장성을 쌓는다니까.

오늘도 내 엄마 우리 집 오셔서는,

“맨손 체조라도 해라, 하루 종일 그렇게 누워 있으면 머리 안 아프냐, 엄마 다니는 주민센터에 80 드신 할머니가 오시는데 눈이 많이 안 좋으시더라, 젊었을 때 안마를 좀 배우셨다며 요가 끝나면 간단히 사람들 몸도 풀어 주시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지, 어쩜 그렇게 옷도 예쁘게 갖춰 입으시고 며느리한테도 꼭 존대하시더라, 어제는 할머니가 춤 동작을 선보이셨는데 다들 눈이 휘둥그레 깜짝 놀랐어라, 유쾌한 왕언니로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술도 한 잔씩 하신다더라…. 그러니까 너도….”

‘또 시작하셨네. 도대체 얘기 중에 대명사는 왜 이렇게 많이 쓰시는 거야, 누구 얘기를 하는 건지, 솔직히 난 관심이 없단 말입니다. 어무이’

듣기 싫은 티가 영력 한 퉁명스러운 어투로 한 마디 하면 끝.

“알았어. 알아서 할게.”

이게 누나의 현주소.

“엄마집 가서 저녁 먹을래? 국수 삶아줄게.”

“내가 알아서 챙겨 먹을게.”

엄마랑 마주 앉으면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 표정이 굳어져.

아직도 누나를 유주 엄마보다는 당신 딸로만 생각하는 거 같을 때 솔직히 화가 좀 나거든.

마흔 중반이 넘은 나와 중1 유주를 동급으로 생각하시나 싶을 때도 있으니 말 다 했지 뭐.

앞 못 보는 딸 평생 뒷바라지 하시는 양반 속, 오죽하겠니.

나도 퍽이나 못된 년이야.

매번 이렇게 툴툴거리고 인상 쓰고 후회하고 또 그러기를 무한 반복이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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