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요

by 밀도

엄마가 전에 없이 서천에 맥문동꽃을 보러 가자시는 거야.

웬만해서는 어디 가자, 뭐 먹자 요구하는 양반이 아닌데, 그 꽃이 퍽이나 보고 싶으셨나 봐.

24시간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다는 탐스러운 공지가 퍼뜩 떠올랐겠다.

동트기 전에 서둘러 다녀오면 되겠다 싶었어.

누나도 엄마도 새벽잠 없기는 마찬가지니 내가 4시 넘어 콜을 불러보기로 한 거야.

그 시간에는 이용객도 없을 테니 잘 잡히겠거니 생각했건만, 상담원 말이 차량이 몇 대 없고, 도 경계를 벗어나는 운행은 병원 아니면 어렵고, 7시 이후에 전화를 다시 주셔야 이용 가능한지 알 수 있으며, 그때도 이용 여부는 확실히 알 수 없어서… 구구절절 안 되는 이유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

맥없이 전화를 끊었지.

‘그냥 안 된다고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한낮에 습습한 열기가 차오르기 전에 몸을 좀 움직이고 싶었어.

“서천이 충청도라서 운행이 안 된다네. 혹시 운동 나가실 거면 톡 주소.”

“6시에 지하주차장에서 만나.”

이리하여 은혜롭고 거룩한 새벽 산책이 성사된 거야.

“너는 갑자기 이 새벽에 서천을 간다는 게 말이 되냐? 왜 그렇게 망령된 소리를 해. ”

“망령되다니. 한산할 때 후딱 다녀오면 좋지 뭘 그래.

이 시간에는 장콜이 시내 밖에 운행을 안 한다네..

안 될 이유도 많아요. 다음에는 가까운 곳으로 찾아봐야겠어.”

대지에 습기가 불타오르기 전, 산책은 썩 기분 좋았어.

풀벌레 소리도 좋고 선선한 바람도 좋고.

이른 아침인데, 운동하시는 분들이 제법 많더라고.

나도 그 시간에 동네 마실을 나간 것은 처음인지라.

한참을 걷다가 엄마 말씀하시길.

“너 눈 감지 말고, 힘줘서 뜨고 있으려고 해 봐. 나이 먹으면 눈꺼풀 처져서 안 그래도 수술하는 사람들 많잖아. 니가 자꾸 눈을 감고 있으니까 보기 별로 안 좋아. 신경 쓰면 뜰 수 있는데 왜 그래.”

“알았어.”

언젠가도 한 번 말씀하셨거든.

그런데, 자꾸 잊어버리게 돼.

의식적으로 눈에 힘을 빡 주고 거의 부릅떠야 겨우 실눈이 떠지는 수준인데….

누나처럼 의안을 착용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나이 들수록 의안을 더 크게 제작한다는구나.

잠 잘 때도 눈이 안 감길 정도로 아예 그렇게 주문하는 사람이 많대.

누나 학교에서 잊을만하면 심폐소생술 연수받는 것처럼 내 어무이 참고 참고 참다가 어렵사리 상기시켜 주셨으니, 잊지 말고 눈에 힘주기 연습해야겠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 그 누가 말했느뇨.

참, 그 옛날 강산이랑 누나 걸어서 퇴근할 때 있었잖아.

그때는 누나 의안 아니었을 때인데, 나도 참 엉뚱해.

한참 신나게 걷다가 문득 눈을 감아본 거야.

근데 뭔가 불안하고 막 부딪힐 것 같고, 못 걷겠는 거지.

그 느낌이 너무 웃기고 황당했던 기억이 있구나.

뜨나 감으나 똑같이 앞은 안 보이는데, 눈을 감으니까 못 걷겠는 생경함이라니.

인간에게 눈을 뜨는 행위가, 그 감각이 어쩌면 본능인가 보다 뭐 그런 생각을 했더랬네.

우리 몸에서 쓰임새가 없는 기관은 퇴화되기 마련.

시각장애인들 보통 나이 들수록 안구 함몰되고 눈꺼풀 쳐지고 각막이며 수정 채며 죄다 혼탁해져서 눈동자 뿌옇고….

그 바람에 외관상으로 좋지 않은 인상을 주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

사회적 기술 측면에서 외모, 퍽 중요한데 말이다.

잊지 않아 볼게.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까만 실눈일지언정 뜨고 있어야 연결 모드가 가동된다는 것을.

팔다리 근력을 너머 눈꺼풀 근력, 그러니까 ‘상안검거근’, 그것에도 ‘힘’이란 놈 한 번 실어보자.

“좋오 아앗 어. 여 엉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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