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머컬처식 열쇠고리 모양 두둑을 만들 차례다. 단위 면적당 작물의 양을 늘리고 노동을 줄이려고 이랑을 둥글게 만든다. 중심을 잡고 동심원을 그려나가야 하는데 벌써 허둥지둥이다. 게다가 여러 작물의 특성을 파악해 오밀조밀 심어야 한다. 당귀는 퍼지면서 자란다. 작물 사이 심으면 허브 역할로 병충해를 줄여준다. 파도 빽빽이 심으면 다른 작물의 병충해를 막는다. 가지와 고추는 60㎝ 이상 자라 그늘을 드리운다. 고추와 고추 사이는 60㎝를 띄운다. 그보다 키가 작고 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작물을 그 사이 심는다. 애호박은 두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지한다. 상추는 직사광선에 녹는다. 여름 해는 서쪽이 길다. 그러면 상추는 어디에 심어야 할까? 땅 파서 뇌를 묻었을까? 아무 생각 없는 나는 상추 모종을 들고 배회했다.”
간결한 문장, 심박한 표현 좋다 좋아!
누나의 온라인 글쓰기 스승님 김소민 기자 칼럼 일부야.
강산이도 재미있게 읽었어?
작가님 얼마 전에 남해로 이사하고, “은모래마을책방” 주인장이 되셨다는데, 책은 한 줄도 못 읽고 그냥 ‘책방 노비’ 시래.
칼럼 찾아 읽어 보니까 생생한 그곳 생활이 보여서 반갑고.
흑강아지 된 몽덕이가 눈앞에 그려지면서 마치 이웃 언니처럼 친밀감 뿜뿜이구나.
“뇌를 파묻었다”는 표현, ‘예술’이어라.
여기 이 사람 뇌의 행방도….
오늘로 2학기 임상실을 개시했겠다.
첫 손님을 맞았어.
내 엄마와 닮은 꼴, 경기도 여자 사람.
그냥 오시라고 해도 번번이 학생들 간식을 푸짐하게 챙겨 주셔.
목소리며 어투가 내 엄마와 꼭 닮아서인지 유독 마음이 가는 분인데….
‘어라. 내가 기억하는 그 어머니가 아닌가? 왜 목소리가 다르지? 성함은 맞는데…. 오랜만이라서? 마스크를 하신 건가?’
혼자 헷갈려하다가 안마 시술이 끝난 뒤에야 가까이 가서 확인을 한 거야.
목도 꽉 잠기고 왼쪽 어깨가 말이 아니게 굳었더라고.
“어머니, 어깨가 더 뭉치셨네.”
“어떻게 다 기억을 하세요. 어제 싸워서 그런가 봐.”
“그래서 이기셨어요?”
“의그 못 이겨요.”
손이 뇌에게 주는 정보.
글을 쓸 때도 그랬던 거야.
심장이 뇌에게 하는 말.
일상을 살면서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 어떤 환히 혹은 환멸을 쓰고 있었어라.
일찍이 두뇌 스포츠 따위 좋아한 적 없었고, 도전하고 싶은 종목이라면 ‘비멍, 바다멍, 불멍’ 등 이 세상 모든 멍을 다 갖다 붙여도 때려눕힐 자신이 있는 ‘멍순이’라서.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가 가는 동안 통화 목적과 대상이 생각 안 날 때, 교환 수업 까맣게 잊어버리고 수업 들어갈 때, 휴대폰이며 텀블러 집에 두고 출근하는 것은 예사요, 간단한 암산 버벅거릴 때….
“오호 통제라!”
자괴감을 너머 위기감이 느껴진다니까.
그래도 이 머리 예전에는 제법 쓸만했었는데….
언젠가부터 다름 아닌 내가 나의 뇌를 의심하기 시작했으니.
슬픔이 밀려오는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