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닝 : 꽃게잡이 선원에서 돼지농장 똥꾼까지, 잊힐게 뻔한 사소한 삶들의 기록』
“퀴닝(Queening): 체스에서 졸(폰)이 상대 진영 끝에 도달하면 잡힌 말 가운데 어떤 말로도 변신할 수 있다. 이때 대부분 여왕(퀸)을 선택한다. 일종의 계층 상승인 셈이다.
한승태 노동에세이 1”
시대의 창에서 나온 책이야.
그 있잖아.
글맛 나는 글.
저자의 표현력이 특출 나.
더없이 극한 상황인데 유머러스하시거든.
“나는 지금도 맞춤법을 많이 틀린다. 하지만 이건 어느 정도는 세종대왕이 너무 정교한 언어를 만든 탓이기도 하다. 고배율 카메라가 조금만 흔들려도 초점이 흐트러지는 것과 비슷하다. 작가를 맞춤법/띄어쓰기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면, 작가가 맞춤법을 잘 알 거라는 생각은 파일럿이 공중부양을 잘할 거라는 생각과 비슷하다고 최대한 공손한 어조로 설명한다. 출판업계에서 한승태 원고 교정 업무는 위험수당이 붙는(화병에 걸릴 위험이 상당하다) 기피 업무로 분류된다.”
시작부터 예사롭지가 않지?
「오이 매달기는 지루했다. 하루 종일 도화지에 30센티짜리 선만 긋는 것 같았다.
방법은 간단했다. 오이 줄기를 들어 올려서 빨래집게로 줄과 함께 집었다. 그런 작업을 수천 번 반복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오싹해졌다. 이게 내 인생의 전부면 어쩌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언젠간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언제라도 내가 행복해질 수는 있을까?
날은 계속 더워졌다. 하우스에 들어서면 이마 언저리가 후끈했다. 삶은 타월을 머리에 두른 것 같았다. 일이 끝난 뒤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졌다. 밥을 먹을 때는 거울을 앞에 두고 앉았다. 반찬들이랑 대화를 나누면서.
김치가 잘 안 찢어질 때는
“어이 김 씨, 우리 좀 좋게 갑시다. 예?”
무말랭이가 너무 딱딱할 때는
“이봐, 무 대리, 요즘 너무 빡빡하게 구는 거 아냐?”
가끔씩은 반찬이 떨어져 밥에 고추장만 비벼 먹었다. 이 시기엔 식사가 비타민제를 삼키는 수준의 즐거움으로 떨어져 버렸다.」
강원도 춘천에서 비닐하우스 작업을 할 때 이랬대.
「개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같이 짖어대는 것뿐이었다.
“멍멍멍! 컹컹컹! 그르르르르 컹컹!”
이렇게 대자연이 나를 한 마리 개로 바꿔놓는구나 생각하니 우울했지만, 내가 놀랄 만큼 개와 유사하게 짖어대자 개들도 조금씩 진정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잘하는 게 한 가지는 있는 법이니까.」
「그는 정말 시원하게 웃어젖혔다.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나는 그 순간 확신했다. 이 놈은 미친놈이다! 내게 미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대화를 정상으로 만들어보려고 이것저것 물어봐도 결국엔 터무니없는 자기 자랑으로 돌아갔다. 그는 교과서적인 사이코패스였다.」
「니가 눈치껏 배워. 나 걔네들한테 비싼 거 사준 적 없어. 그런데도 걔네들이 날 오빠라고 부르고 따라. 왜 그런지 잘 생각해 봐. 모르겠어? 통찰력을 가져.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 나도 완벽해 보이는 것뿐이야. (…….)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야. 내 제일 큰 단점이 뭔 줄 알아? 키가 작다는 거야. 그 여잔 원래 날 좋아했다고. 너 그거 눈치 못 챘지? 그니까 니가 멀은 거야.”
나는 그가 여성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지조 있게 홀아비의 길을 가주길 바랐다.」
「내가 보기에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의 특징이라며 비난하는 결점은 공장 직원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한국인이 그런 행동을 했을 때는 그것이 그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만 중국인이 그런 행동을 하면 곧바로 중국인 전체의 결점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한국 직원에게는 “아, 승태 저 자식 틈만 나면 농땡이나 부리고 영 못 쓰겠어” 하는 반면 중국인에겐 모조리 싸잡아 “하여간 중국 놈들 저거 봐, 안 돼. 쟤들은 안 돼” 하며 손사래를 쳤다. 한국 사람이라는 단어에는 최면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아저씨들은 입버릇처럼 “그래도 힘들 땐 한국 사람밖에 없어” 하며 서로를 위로했지만 바로 그 힘든 시기, 즉 낮은 보수, 긴 작업 시간, 위험한 작업 환경을 제공하는 그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편리하게 잊어버렸다. 내가 도착하기 전 6개월간 B.3을 거쳐 간 40여 명 전부가 한국인이었지만, 그걸 두고 ‘아, 한국 놈들은 안 돼. 도대체 끈기란 게 없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건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일했던 공장 사연.
「며칠 후, 선주가 경매장에 물건을 넘기고 나를 부르더니 만 원짜리 뭉치를 쥐여 주고 걸어가 버렸다. 40만 원이었다. 왜 이거밖에 안 되냐며 따져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돈을 받은 것 자체가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다행이네, 나는 영감이 달랑 기찻값만 주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냥 좋은 경험 했다 생각해.”
“그래, 남의 돈 버는 게 이렇게 힘든 거야.”
40만 원이 내가 6주 동안 일하고 나서 받은 돈이었다. 그것이 바다 위에서 죽을 둥 살 둥 통발을 쌓고 나서 받은 대가였다.」
「치열하지만 가난한,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누구라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법한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꽃게잡이 배 선원이나 양돈장 똥꾼처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우리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들의 숙소는 어느 정도 크기인지, 여름엔 얼마나 덥고, 겨울엔 얼마나 추운지. 사람들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꿈은 무엇인지. 식사로는 어떤 음식이 나오고 급여는 어느 정도인지. 작업은 어떤 과정을 거치며 도구는 어떤 것을 사용하는지.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등등 …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잊힐 게 분명한 사소한 사항들로 책을 가득 메우고 싶었다.」
지구상에서 유독 과소평가당하는 인간들 많잖아?
누나 웃긴 얘기 하나’ 해줄게.
강산아 누나가 ‘퀴닝 책에 골몰하다가 아까 낮에 유주 가을옷을 장만하러 잠시 쇼핑을 다녀왔어요.
취향이 분명한 소녀 직접 고른 옷이 아니면 입지를 않으시는 관계로.
유주 아빠 시간이 되는 주말이라 모처럼 가족 나들이.
어머니 카드는 유주에게만큼 활짝 열려 있나니.
장장 48시간 동안 우리 집 소녀 활자를 한 자도 안 본 것이 영 마음에 걸려서 누나가 6학년 2학기 국어 단원평가 프린트물을 강제한 거야.
프린트할 때 말이지.
소녀 자존심 상할까 봐 어머니가 부러 ‘6학년 2학기’ 글귀를 지우는 배려와 센스를 발휘하셨거늘.
오오. 소녀 지문을 보자마자,
“엇, 이거 6학년 2학기 내용 아님?”
‘헉, 어찌 알았지? 공부를 하긴 한 건가?’
“오오! 어떻게 기억을 다 해?
우리 딸 대단하네. 맞아.
작년에 배운 내용이면 뭐 눈 감고도 풀겠다.”
“아아니, 그건 아니고….”
‘어머니가 돼서 딸 과소평가나 하고. 그래 6학년 2학기는 좀 너무 했지? 미안해 딸.
그런데 어머니 채점 다 해봐야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지 말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좀 신중한 타입이잖니?
과연…?’
오오오, 심장 떨리는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