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데, 소녀 아침 6시 50분에 집을 나섰어.
흰 티에 V넥 도복을 빼입고 띠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씩씩하게 출발.
오늘은 댄스부 친구들이 응원 오기로 했다며, 끝나고 친구들 떡볶이 사 줄 돈을 두둑이 챙겨 간 거야.
어머니가 대회 접수할 때 싫은 소리를 하긴 했다만 막상 도복 갖춰 입고 무사처럼 나서는 모양이 오오 간지 나시더라고.
유주 아빠가 새벽부터 따끈한 누룽지에 계란찜을 차려냈네.
좀 싹 싹 긁어먹어주면 좋으련만, 간신히 세 숟가락이나 먹었나.
헝아는 다시 골아떨어지시고, 누나는 소설 창작 강의 듣다가 8시 넘어 특별 출근.
특수교사 연찬회가 있었거든.
마음씨 고운 동료가 누나 오가는 길을 동행해 준 덕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었어.
강산아, 누나 사회성 많이 떨어지는 사람이잖아.
나이가 먹어도 사람 참 안 변해.
아쉬운 소리 하는 것, 거절당하는 것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고.
특히 식사 장면에서는 번번이 더 불편해지고 말아요.
적당히 친한 척하면서 웃고 떠드는 것이 나는 왜 그렇게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고맙게도 점심 먹고 해산.
귀가하여 다시 강의를 들었어.
‘소 설 창 작’
한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인경 교수님이 들려주시는 창작 길라잡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음성으로 강의를 녹음해 주셨구나.
먼저 드림 다이어리를 써보라고 말씀하시네.
지금 당장 이루지 못할 것도 괜찮다고, 다만 잊지 않고 가슴에 품고 있으면 반드시 때가 온다고.
누나는 앞뒤 없이 ‘소설가’라는 단어가 영혼에 차올랐어.
나를 무엇으로 상징할 수 있을까?
브레인스토밍으로 소재를 길어보라고 하셨어.
그러면서 교수님 당신을 ‘딸기’, ‘다람쥐’, ‘양파’ 등으로 소개하시는데 흥미롭더라고.
사건, 시간, 상황, 심리를 서술해 가다 보면 서사가 만들어진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전래동화를 듣고, 6학년 때부터 소설에 파묻혀 살았건만 어쩌면 이다지도 완벽하게 막막할 수가 있단 말이니?
누군가를 저격하지 않으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흐르는 강을, 각각의 선량함 앞에 철저히 차단된 어떤 유리막 같은 미묘한 공기를 낱낱이 담아낼 이야기였으면….
차별, 운동, 항의, 투쟁 뭐 이런 색깔 아니고.
지극히 보통 사람 사이 생기는 갈등 상황이었으면….
장애인이 주인공이어도 심파나 인간 승리 프레임 바깥 치열한 세계를 담아낼 수 있었으면….
가령 도도한 장애인은 왜 재수 없게 느껴질까?
장애인에게 친절하지 않은 비장애인은 무조건 나쁜 사람일까?
장애인에게 친절한 사람은 모두 착할까?
장애인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가장 힘든 부분과 그 이유는 무엇일까?
50% 할인에 익숙한 장애인은 온전한 1이 될 수 있을까, 없을까?
나아가서 (1+Α)를 꿈꾸는 것이 가당키는 할까?
장애인이 사람 노릇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기요, 편리한 수단으로 돈 외에 무엇이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봄이 필요할 때 나는 어떤 의미가 될까?
‘1’을 ‘11’처럼 보이게 하는 소질과 ‘11’을 ‘1’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인종은 어느 쪽이 더 우성일까?
도덕적으로 깨끗한데 실속이 없는 사람과 반칙 따위 아랑곳 않으며 결과를 내놓는 이는 누가 더 유능할까?
인간의 쓸모 있음과 없음의 척도는 과연 무엇일까?
그냥 이런저런 고민들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었으면 좋겠어.
강산이가 그 옛날처럼 누나 안내해 주면 안 되겠니?
“문 찾아. 이야기 공장으로 들어가는 문.”
우리 강산이 마트 문도, 교회 문도 겁나게 잘 찾았었잖아.
아이고, 벌써 자정이 넘어 버렸네.
여기 태권 소녀는 꿈속에서도 ‘금강’이니 ‘고려’니 품새를 연습하시려나?
누나 이만 잘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