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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지나니까

by 밀도

입추가 지나니 제법 선선한 바람이 느껴져.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겁고 습한 기운에 밤낮으로 에어컨을 돌리게 되는구나.

누나는 개학을 했어.

교내에서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는 일상, 매우 익숙한 리듬이지.

올여름에는 네 덕에 누나 생애 첫 북토크를 다 했단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시공간이 정말 꿈만 같았어.

원 없이 떨었고, 설렜고, 감격스러운 인생 사건이었구나.

이슬아 작가, 프로잖아.

그녀 덕에 물 흘러가듯 두 시간 토크를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어.

민찬이의 한 마디.

“동무 10분 지나니까 괜찮아지셨소.”

사인은 누나가 독자님들 성함을 점자로 써 드리는 방식으로 해봤는데, 색다른 경험이라서인지 다행히 흥미로워들 하시더라고.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독서하고 쓰는지, 누나에게 쓰기는 무엇인지,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는 어떤 작품인지, 『사랑하게 된 거야, 너를』은 어떤 책인지 말하고 웃고 울고 사진 찍고 하다 보니 행사가 끝나더라.

거짓말처럼 마치자마자 배가 아프기 시작했으니.

사람 몸과 마음이 그렇게 ‘하나’ 더라니까.

강산이 그날 안내견 나라 동생도 봤니?

서른 명 남짓 모인 공간에서 무려 두 시간 넘게 엎드려 있으려니 좀이 많이 쑤셨겠지?

나라 강산이가 내던 소리 그대로 한숨도 쉬고, 그르렁 지루하다고 투정하면서도 끝까지 잘 버텨주었단다.

그런데 강산아, 아직도 여전하더라.

우리나라 핫플인 신촌에 위치한 대형 카페에서도 글쎄 안내견 출입 거부를….

우리 너무 익숙한 절차였잖니.

일행에게도 매번 미안하고, 거부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노상 안고 다녀야 하는 그 불편함.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

나라 애미 하는 말이 사실 택시도 타기 힘든 형편이라 하더라고.

그 피로도가 너무 선명해서 못내 마음이 안 좋았어.

강산아, 우리 둘 이야기는 요조 누나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오디오북이 제작될 거야.

기대된다고?

암만, 누나도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몰라.

우리 강산이 덕분에 누나가 책을 사랑하는 이들과의 만남을 누려.

9월부터는 독서소모임도 수필 강의도 시작된단다.

누나, 더 더 깊은 글 쓰고 싶은데….

묵은지 같이 넉넉하게 발효된 그런 글맛 낼 줄 아는 작가이고 싶어.

누나를 “작가님”이라 호명하는 이들이 솔직히 얼마나 신기하고 어색한지 몰라.

감사하기도 부끄럽기도 벅차기도 신나기도 한 거야.

쓰고 쓰고 또 쓰고 또 써도 지치지 않기를.

부디 누나가 쓰는 원고가 외롭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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