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외로울 땐 결혼이 하고 싶고, 결혼을 하고 나면 아기가 갖고 싶고, 아기가 생겨나고 세월이 흘러가면 혼자가 부러워진대.”
독자님들 이 가사 기억하시나요? 90년대를 주름잡았던 댄스그룹 “쿨”이 부른 『결혼을 할 거라면』의 한 대목입니다. 79년생, 결혼 16년 차 워킹맘의 귀 아닌 뇌에 번개 치듯 꽂혀버린 소절이에요. 독자님들은 어떠신가요?
제게는 인공호흡기와도 같이 소중한 동생이 둘이나 있습니다. 부부싸움 끝에나 보고 싶은 공연이 있을 때마다 찰떡같이 함께 하는 솔메이트들이지요. 우리 세 자매 모두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는 줄곧 육아도 함께였습니다. 평생 갚아도 다 못할 물리적·심리적 지원을 동생들에게 받고 사네요.
지난 주말 막내가 조카들를 데리고 친정 나들이를 왔습니다.
동생이나 저나 실로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어요. 커피까지 손에 들고 쾌적한 좌석에 앉으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더라고요. 저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뮤지컬을 무턱대고 좋아합니다.
화면해설된 작품을 여러 앱에서 양껏 들을 수 있음이 참여해 주시는 모든 님들께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집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화면해설 영화 감상 ‘무조건’입니다. 그런데, 영화관 현장에서 느껴지는 사운드와 분위기가 또 다르잖아요. 『화사한 그녀』, 『30일』, 『화란』 등 한국영화가 푸짐했습니다.
요란하게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가 서로를 증오하게 되면서 이혼 절차를 진행하는 와중에 기억을 잃고 상대를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 30일을 그린 영화가 두 아줌마의 구미를 확 잡아당겼어요. 남주가 매력적인 강하늘 배우이기도 했지만 100%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스토리가 흥미를 돋우웠습니다. 극 중 변호사 노정렬이 후배에게 말해요.
“야야 연애도 하지 마. 결혼할라.”
아내는 악귀같이 욕하며 소리칩니다.
“화장실 쓰고 변기 내리라고 했지? 학원 선배 여동생 축의금까지 챙겨. 백수가...”
취준생 노정렬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그때부터 아내에 대한 증오가 싹텄다고 회상합니다.
영화가 매우 발랄했어요. 코믹한 대사와 인물 덕분에 객석에서는 연신 폭소가 터졌지요.
남주가 진지하게 얘기를 하는 데 여주는 무선 이어폰을 꽂고 있어 못 들었다 하고, 우아한 장모님은 사부인에게 사위를 거지라고 한 것이 아니라 거지 같다고 한 것이라 기품 있게 정정해요.
남녀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일상 속 피로까지 공유하고, 너 아니면 내게 밀려오는 어떤 책임에 대한 날 선 공방에 익숙해지고, 부모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고…
저에게 ”결혼”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온라인독서 소모임에서 『에이징 솔로』라는 책을 읽었어요. 결혼 아닌 비혼을 택한 여자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가정의 형태가 다양해지는 사회 현상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실제 비혼을 선호하는 인구층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어요. 『이상한 정상 가족』을 쓰신 김희경 작가의 인터뷰와 통계가 가지런히 정리된 책이었습니다.
“2015년 무렵부터 한국의 주된 가구 형태가 된 1인 가구는 2021년 기준 716만 6,000 가구로 전체의 33.4%에 이르렀다.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29.3%) 보다 많다.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넘을 정도로 흔한 삶의 유형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비정상, 소수, 비주류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에이징 솔로 6P, 동아시아)
토론은 뜨거웠습니다.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됐고, 지정 도서에 대한 평점 폭도 매우 넓었어요. 사람 사는 모양이 참 다양하구나 새삼 깨달으면서 이제는 정말 공동체의식보다는 개인 취향이 절대적인 세상이 되었구나 실감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못내 불편한 사회적 시선을 무릅쓰고 사는 그들이어도 끝까지 위축되지 않으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요구하는 당찬 기운과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결혼”이라는 키워드로 도서 검색을 해봤어요. 어마무시하게 많은 제목들이 쏟아지더군요.
『결혼, 뒤집어, 말어?』부터 『연애할 땐 Yes, 결혼하면 No가 되는 이유』, 『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갖고 싶어.』, 『나라면 나와 결혼할까?』,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결혼하면 괴롭고, 안 하면 외롭고』등등…. 도서 목록을 살피다가 단연 제 귀를 사로잡은 제목은 이러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
몇 년 전에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어요. 책장이 술술 넘어갔고, 옆집 언니가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사소하지만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장면들이 명쾌한 필치로 써져 있었지요.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문학 작품을 향유하는 근본적인 이유요,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산다는 것을 확인하고 위로받는 것.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보면 당장의 이 고통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잖아요? 책장을 덮으며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내 남편도 이 제목에 열광하며, 홀린 듯 덥석 책장을 펼칠지 모르겠다는…
독자님들은 어떠신가요?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