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아 오늘은 부활절이야. 예수님 다시 오신 날.
기쁘고 기쁜 날인데, 누나는 예기치 않은 장례식에 다녀왔어.
강산이 기억나니?
누나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할 때 우렁차게,
“이야, 밀도 예쁘다.”
소리쳤던 기분 좋은 목소리.
어디서든 “허허허” 참 잘 웃었는데….
아무도 웃을 수 없었던 누나 결혼식, 그 무거운 공기를 뚫고 내 귀에 박힌 그 목소리가 유독 고마웠었거든.
그 목소리 주인공이 갑자기 하늘로 떠난 거야.
머리가 아프다고 했었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쓰러지기 전날까지 동료들과 즐겁게 한 잔 기울인 지극히 평범한 퇴근이었다고.
뇌출혈이었대.
의사들이 파업을 해서 응급 처치에도 어려움이 있었나 봐.
50년도 채 못 살고, 허망하게 가버렸어.
누나가 시골에 사느라고 중·고등학교 동기들을 못 보고 산 지가 근 30년이 되어가잖니.
슬픈 장례식장에서 그 옛날 학창 시절, 같은 추억을 공유한 어른 우리가 인사를 나눴어.
반가운데 낯설고, 어색한데 편안한 손길들이 서로를 안내했지.
누나는 전혀 볼 수 없으니 그들의 늙은 얼굴을 알 길이 없잖아.
목소리에는 주름이 없으니까.
내 얼굴에 내려앉은 30년 세월만 어린 동무들 앞에 낱낱이 들켜버린 것 같아서 괜스레 맥주잔만 만지작거렸네.
갑작스러운 부고에 가족들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을 텐데, 오랜만에 만나는 동기들이 인사를 나누며 웃고 떠드는 양이 누나는 못내 조심스럽더라고.
눈감고 사는 우리들에게 소리가 없는 얼굴은 없는 것과 같다 보니, 무심결에 결례를 범한 거나 아닌지
더 큰 사고는 글쎄 누나 겉옷이 밝디 밝은 미색이었다는 사실.
나름은 양말까지 검은색으로 찾아 신고 나선 걸음이었는데, 매일 입고 다니면서도 그 카디건이 어두운 톤인 줄 알았던 거야.
장례식장을 나설 때까지도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조문이라도 겉옷 벗고 했다면 덜 미안했을 텐데….
햇살이 눈부신 새봄에 친구가 하늘로 간다.
강산아, 그곳에서 누나 친구 만나거든 아는 척 한 번 해줄래?
워낙 사교성 좋은 인물이라 낯선 곳에 가서도 “허허허” 잘 웃을 거야.
풍채 좋고 하이텐션 신입이면, 100%니 꼭 챙겨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