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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한 번 오지게

by 밀도

아는 길이고 아무 소리도 없었어.

흰 지팡이를 손에 쥐고도 그렇게 부딪힐 수가 있더라.

시설 생활인인 듯했어.

고개를 푹 숙이고 왜 출입구 한 복판에 서 있었을까?

이쪽은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눈물이 찔끔 나는데, 그쪽은 미동도 없이 고요하더라고.

석상 같은 포즈에 내 코뼈가 부러진 것은 아닌지, 너무 아프고 쪽팔리고 울컥 짜증이 났어.

‘멍자국, 오래갈 텐데…’

부딪히고 깨지고 넘어지고, 하루 이틀도 아닌데, 이 무자비한 통증에는 익숙해질 제간이 없다.

오랜만에 선배와 통화를 했어.

누나와는 신기할 지경으로 공통분모가 많은 여자사람.

저시력이었다가 전맹이 됐어. 요령 부리며 남탓하고 큰소리 내는 사람을 극혐 하지.

누나 암 진단받고 멘붕 와서 전화를 걸었는데, 선배가 이미 1년 전에 똑같은 진단을 받았다는 거야.

6개월에 한 번씩 추적관찰 중이라는 소식이 거짓말 같았어.

“넌 오늘 얼굴? 난 어제 정강이.”

상처 부위를 논하며 웃을 수 있는 언니 존재가 찐 위로다.

진심으로 나를 염려해 주고 칭찬해 주는 선배가 정기 검진을 앞두고 있어 누나가 깨방정을 한 판 떨었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저 건강했으면 좋겠어.

타인의 눈을 징그럽게 의식하며 평소 무표정이다가 반짝 하이텐션이 되는 누나 모습 강산이는 익숙하잖아.

네가 사람들 사이에서 차갑게 도도를 부리다가 누나랑 둘이 되면 배 보이며 뒹굴고, 껌 가지고 장난치고 했던 것과 비슷한 낯가림이랄까.

우리 둘은 너무 잘 알고 있는 서로의 가면이다. 그렇지?

강산아, 구름 위에서 누나 보고 있다가 어디 부딪힐라치면 딱 한 번만 “멍!” 알려주면 안 되겠니?

보고 싶다. 쫑긋한 귀도 우람한 덩치도 따끈한 똥도 촉촉한 코도 파도같이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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