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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May 09. 2024

효녀 심청은 못되더라도

    

강산아, 오늘 어버이날이잖아.

계획성 없는 누나의 프로 엇박 스토리 좀 들어볼래?

아침에 일어나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어.

늘 그랬듯 120초가 안 되는 통화.

출근을 했어.

내 엄빠 계좌에 각기 송금하고 전화를 걸었지.

이쪽은 300초가량 소요.

형이 주간 근무라서 같이 저녁 식사할 수 있는 날인데도 누나가 미리 판을 안 깔아놓은 거야.

유주 귀가 시간이 들쑥날쑥이라 어른들만 나가기도 그렇고, 아이 학원 끝난 후에 식당으로 이동하면 어른들 식사가 너무 늦어질 것 같고 나도 난감했다고.

고심 끝에 퇴근길, 내 아빠가 좋아하시는 맛집 묵은지 갈비찜을 포장하기로 했어.

결국은 내 엄마가 밥 짓고 치우는 일상 밥상이 된 거지.

삼례까지 양식 마련을 위해 걸음 한 김에 활동지원사님도 갈비찜을 주문하셨어.

마침 3,8장 날이라서 이동 시간이 제법 걸리더라고.

‘이만하면 내할 도리는 했다. 내가 여기까지 부모님 모시고 올 형편은 못되니 이렇게라도 좋아하는 메뉴 드시는 정도 효도로 만족하련다.’

“맛있게 먹어요. 내일 봅시다.”

활동지원사님이 건네어 주신 묵직한 음식 봉지를 들고 친정집 초인종을 눌렀어.

사위와 손녀 들어올쌔라 엄마는 부랴부랴 쌀 씻어 밥을 지으셨지.

별 수 없는 당신 노동 앞에서 겸연쩍어진 내가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어.

“야, 이거 묵은지 아니야. 그냥 갈비찜인데.”

‘헉, 바뀌었구나. 활동샘이 갈비 대짜, 내가 묵은지 중짜였는데….’

음식은 이미 냄비 속에 들어갔고, 식탁은 차려진 다음이었어.

묵은지 효도 프로젝트가 물 건너가는 순간이여라.

갓 지은 밥과 갈비찜, 뼈 없는 갈치까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내신 내 엄마의 어버이날 셀프 축하연이로세.

“아빠, 묵은지하고 이 갈비 찜하고 뭐가 더 맛있으셔?”

“음, 아무래도 묵은지가 낫지.”

시작은 분명 ‘아빠’였거든.

근데 유주 부녀가 갈비찜을 너무 맛있게 먹는 거야.

우리 집 호놀룰루 뽀로로는 글쎄 제 손으로 밥을 더 퍼다 먹더라니까. 

“Yes!”

누나가 먹는데 진심인 사람이라서인지 유주 잘 먹는 모습 보면 무턱대고 신이 나.

그렇게 나의 어버이날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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