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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May 14. 2024

『좀머 씨 이야기』를 읽었어


 오늘의 토론 도서는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좀머 씨 이야기』

누나 중학교 때 라디오에서 광고했던 제목.

당시에는 『앵무새 죽이기』, 『메디슨카운티의 다리』, 같은 영미소설이 인기였잖아.

『좀머 씨 이야기』는 두 번째 읽었어.

독자 눈에 따라 같은 작품, 다른 느낌.     

“2. 가장 인상 깊은 한 문장/장면이 있으시다면 한 구절만 소개해주세요.     

처음에 나는 아저씨가 그곳에 서서 뭔가 잃어버린 것을 물속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누가 신발을 신은 채 물속에서 뭔가를 찾으려고 한단 말인가? 그러다가 아저씨가 다시 앞으로 전진하였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이제 목욕을 하려는가 보다. 하지만 누가 밤에, 그것도 10월에 옷을 다 입은 채 목욕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나중에 아저씨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때 이제는 아저씨가 호수를 걸어서 건너려는가 보다라는 터무니없는 한심한 생각조차 했다. 수영을 해서 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 1초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좀머 아저씨와 수영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건 절대 아니었다. 수심이 1백 미터였고, 반대편 둑까지의 폭이 5킬로미터인 호수의 바닥을 허겁지겁 걸어서 가로지르리라는 생각뿐이었다.”     

어린아이 시선인데, 개인주의 팽배한 현대인의 타인에 대한 어떤 태도 혹은 합리화 패턴의 흐름을 떠오르게 하는 문장이라서 인상적이더라.     

“10. 주인공은 좀머 씨가 호수로 들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2주가 지나 마을 사람들이 실종신고를 하고 여러 추측을 하는 것을 보면서도 좀머 씨가 호수로 들어간 것을 말하지 않는데요, 여러분들은 주인공의 이런 행동에 동의하나요? 동의하기 어렵나요?”     

누나? 동의하기 어려웠지.

솔직히 좀머 씨에 대한 연민이나 인정이라기보다는 그 죽음을 목격하고도 묵고 한 스스로를 평생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서.

최근 연극 무대에도 오른 「불편한 편의점」도 생각나고,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도 떠오르는 시간이었네.

다른 토론자들 답변 들으면서 눈감고 사는 우리들 고충 다 비슷한 모양인가 싶었어.

타인의 과잉친절에 관한 논제.

지하철 타고 이동하는 길, 서 있고 싶은 맹인 속내는 아랑곳없이 주변 사람들이 자리에 앉으라며 손을 잡아 끄는 통에 기어이는 본의 아니게 착석당한 일, 흰 지팡이 들고 멀쩡히 잘 가고 있는 맹인 팔을 불쑥 잡고 안내를 해준답시고 엉뚱한 곳에 데려다 놓아 오히려 주행 방향 되찾느라 진땀 뺐던 경험 등 웃지 못할 사연들이 푸짐하구나.

 누나는 밤낮없이 책 읽고 글 쓰는 일 하면서 월급 받을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구먼, 중학교 언니야들은 주말 내도록 유튜브만 보셨다고, 아는 작가 하나도 없다고, 원래 책 안 읽는다고 또박또박 대답도 자알 한다.

자정이 지났어.

만보 찍었고, 독서토론 참여했고, 설거지만 하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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