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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n 03. 2024

아슬아슬했다

저녁 9시 30분.

유주 독서 과제 마감 시간이었어.

보름 동안 책 한 권 읽기를 어머니와 약속했었거든.

고심 끝에 내가 선택한 도서는 노경실 작가의 성장소설 『열네 살이 어때서』.

어머니가 부러 읽으면서 유주 닮은 주인공 연주를 발견, 이거다 싶어서 대출한 책.

표현도 재미있고, 중1 소녀들의 고민과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더라고.

월말이라서 독서평설도 마무리 지어야 했어.

오늘 마감할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우리 집 뽀로로는 교회 마치자마자 영상편집부 언니와 마라탕 약속이 있다며 유유히 출타를 하시더라.

과연 마감 시간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다 했냐? 으이그, 떡볶이에다가 콜라 말아먹을 연주야, 너, 일 등 하면 나한테 뭐 사줄 거야?”

민지는 책가방을 들고일어나며 물었다.

“민지야, 그런데 너 아까부터 뭐에다가 뭐 말아먹을 연주라고 말하는데 갑자기 왜 그러는 거니?”

연주의 물음에 민지는 음흉한 계획을 품은 사람처럼 싱긋 웃었다.

“왜? 재밌어? 자꾸 해줄까?”

“됐거든! 재밌는 게 아니라 징그럽고, 유치하다”

“그래? 그래도 난 재밌는데. 오늘 아침에 우리 외할머니가 친구랑 전화로 싸우면서 그러는 거야. ‘이 된장국에다가 호박 삶아 먹을 할망구야!’ 그런데 그 말이 너무 재밌게 들려서, 나도 이제부터 그렇게 말하려고.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 주변 사람들은 다 나의 요리 대상이라는 거지 “

“왜? 튀기고, 삶고, 굽고, 찌고, 지지고 볶고... 이런 요리법도 덧붙이지 그러니?”

“맞다. 이왕이면 다양하게 요리해야겠네. 그럼 실습해 볼까? 음... 생각났다! 기름에 살살 지진 고등어를 된장에 푹 조렸다가 스파게티에 둘둘 말아먹을 연주야! 어때? 더 재밌게 들려?”     

영락없이 위 대목이 유주의 웃음 포인트였지.

어머니 예상을 안 벗어나요.     

유주 실컷 놀다가 8시가 넘어 귀가를 했어.

어머니 속은 부글부글 끓는데, 들어와서도 태평하게 친구랑 전화를 한참 하는 거야.

9시가 다 되어서야 갑자기,

“나 전화 끊어야 해. 엄마가 책 읽으라고 했어.”

그러고는 고요해.

9시 23분, 요란하게 박수를 치며 뛰쳐나온 뽀로로가 소리쳤어.

“엄마 박수. 빨리 박수 처. 내가 오늘 시간 안 될 것 같아서 책 가지고 갔다고. 버스에서 읽었다니까.”

“애썼네. 다 읽은 지금 이 순간 유주는 무슨 생각이 들어?”

“응, 연주가 나랑 좀 비슷한 거 같아. 아빠 늦는대 그럼 아싸, 엄마 1박 지리산 간대 그래도 아싸!”

“근데 독평은? 워크북도 제출하셔야 하는데.”

“어, 독평? 그건 하라고 안 했잖아.”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주특기인 ‘모른척하기 심공’을….

약속은 약속이니 독평까지 밀어붙였어.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과제를 마치는구나.

어제 형이 보내온 용돈합의서도 아이와 얘기해야 하는데, 벌써 잘 시간을 훌쩍 넘겼으니.

결국 또 자정을 찍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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