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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Jul 22. 2016

나의 산티아고記-14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

산티아고 순례를 결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인터넷에서 산티아고 관련 카페에 가입한 것이다. 수년전에 한국에서 읽었던 몇 권의 산티아고에 대한 책은 기억에 거의 없었고, 전자책으로 읽은 두 권의 책 말고는 인터넷이 유일한 정보원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카페에는 정보의 과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많은 경험담들이 다양한 사진들과 함께 올려져 있다. 심지어 순례를 하면서 실시간으로 매일매일 글을 올리는 대단한 정성을 보이는 순례자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그렇게 자신의 여정을 알릴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했다(실제로 걸어보니 더 대단한 정성임을 알 수 있었다. 나의 경우는 도착해서 맥주 마시고, 밥 먹고, 씻고, 빨래하는 것만으로도 일정이 빠듯하기만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도의 느린 인터넷 사정은 멋진 사진들로 가득한 카페의 대부분 게시물을 보는데 적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글 중심의 게시물을 훨씬 선호할 수밖에 없었고, 글에 묘사된 경험과 풍경들을 상상하는 것이 훨씬 즐거웠다. 나의 산티아고 여행기에 최소한의 사진만을 올리는 것은 그때 느꼈던 이지미의 과잉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쁘고 멋진 이미지들만으로는 40일의 도보여행이 담고 있는 그 무엇을 담아낼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가능하면 전혀 사진이 없는 여행기를 남기고 싶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나 장 크리스토프 뤼팽의 '불멸의 산책'처럼. 하지만 나는 그들 같은 필력을 갖추지 못했으니 글의 힘으로만 그 길과 나의 경험을 전달하기가 어렵다. 결국 읽고 보는 이의 몫이 될 수 있도록 약간의 사진을 첨부하는 성의는 표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무튼 산티아고 관련 카페에는 정말 많은 정보들이 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선택하는 경로인 프랑스길을 가기 위해 파리에서 출발지인 생 장 피 드 포르까지 가는 교통편 안내부터, 가지고 갈 필수품, 배낭, 복장, 신발 등등 수많은 정보가 널려 있고, 거기서 제대로 원하는 정보를 찾기 어려울 때는 언제라도 질문을 올리면 친절한 답을 대개는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얻는 정보를 기초로 구할 수 있는 물품들을 하나 둘 준비했는데, 설사 미처 준비하지 못한 물건이 있다 해도 대부분 출발지에 가서 구할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파리까지의 항공, 생 장 교통편, 순례 여정, 준비물 등등 이런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던 내 눈길을 잡아끈 보다 중요한 정보가 있었다. 바로 산티아고 길에서 권총강도를 만났다는 한국인 순례자의 이야기였다. 순례를 마치고 온 지금까지도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 중 하나라고. 하지만 그것이 100%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15년 초에 올라온 그 글에는 실제로 인적이 드문 길을 새벽에 걷다가 권총 강도를 만나 손발을 묶이고 소지품을 빼앗긴 순례자의 경험담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현지에서도 너무 이른 새벽에 혼자 길을 나서는 것은 피하라고 조언을 한다. 이 글을 읽고 적지 않게 겁이 난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내가 길을 떠난 2015년 9월에 조금 더 심각한 일이 있었다. 그 해 4월경 순례 중 실종된 중국계 미국 여성이 숨진 채로 발견된 것이다. 용의자는 순례길 인근에 사는 농부였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연신 '페레그리나'(여성 순례자를 가리키는 스페인어)라는 말과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나오는 뉴스 속보를 보고 다시 겁을 먹기도 했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방인, 그것도 여성이라면 별 수 없이 조금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 설사 순례길 위에서 일지라도 아주 다르지는 않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슬프게 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실제로 내가 걷는 동안에는 어떤 종류의 위험도, 심지어 불쾌한 경험도 겪지 않았다. 낯선 이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모든 순례자들과 스페인 사람들에게 그래서 더 감사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자신의 경험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므로. 내가 만난 모든 이들의 친절이 내 세계를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으므로. 그러니까 나로서는 산티아고 길이 전적으로 안전하다거나, 혹은 위험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 중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조심해." "뭐? 겁쟁이 같으니라고. 커피나 마시라구."

사실 산티아고 길 순례를 떠나기 전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개였다. 이것 역시 몇몇 순례자들의 후기에서 읽게 된 것인데, 스페인의 시골에서는 개를 묶어 키우지 않고 덩치가 큰 개들이 마구 돌아다닌다거나, 개들이 덤벼들어서 위험했다는 이야기들이 간간이 있었다. 어릴 적 개에 물려 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이거야 말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지만, 역시나 개 때문에 나쁜 경험을 한 적도 없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다만 정말 무서웠던 적은 좁은 길에서 떼로 몰려오는 소를 만났을 때였는데, 인도에 살면서 소도 무서워하는 탓에(나는 아무래도 대부분의 동물을 무서워하는가 보다. 예외가 있다면 고양이 정도.) 가던 길을 되돌아 달아날 정도였다. 


과거가 추억이 되면 대부분 그렇듯이 좋은 것만 남겨진다. 산티아고 길도 예외는 아니어서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도, 심지어 그 끔찍한 빈대의 추억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길을 걸었던 시간이 내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추억의 힘이 겁이 많은 내가 산티아고 길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고, 심지어 언젠가는 또 가리라 마음먹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 사전 정보는 불필요한 관념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모든 것은 당신이 직접 겪어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당신의 세계를 스스로 완성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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