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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Aug 07. 2016

나의 산티아고記-15

day8. 비아나-나바레떼:22.5km

미쉐린 가이드북에 따르면 전날 28km를 걸어 로그로뇨에서 묵어야 했다. 하지만 28km는 너무 멀게 느껴진 데다가 대도시인 로그로뇨에서 묵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그전에 있는 비아나에서 묵고 8일째 여정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나바레떼. 중간에 로그로뇨를(당연히) 지나간다. 지나면서 보니 로그로뇨는 생각보다 예쁜 도시였다. 로그로뇨라는 글자와 함께 바닥에 새겨진 카미노 표지도 본 것 중 가장 예뻤다. 이 곳에서 하루 묵었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은 언제나 진리일 터, 그때그때의 판단을 믿고 결과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바레떼가 가까워지면서 길 왼쪽으로 철조망이 나타났다. 도로와의 경계를 나누는 철조망인데, 여기에는 카미노를 걷는 순례자들이 나뭇가지로 만들어놓은 십자가가 가득하다. 나중에 산티아고에 들어서는 길목에서도 이런 십자가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철조망을 채운 그 십자가들에 어떤 마음들이, 염원들이 깃들어 있을지, 그 마음을 신은 알고 있을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발견한 노란 리본. 바로 세월호 리본이었다.

이 리본이 왜 여기에 와 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카미노 순례 전날, 생 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만났던 다정이. 세월호 리본을 200개 가져와서 순례자들에게 나누어 주며 세월호 이야기를 알리는 데 열심이었던 다정이가 걸어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 리본에 담긴 마음, 고맙고 예쁜 다정이의 마음도 하늘에 계신 그분이 알고 계시리라 믿었다.


day9. 나바레떼-아소프라:23.8km

9일째는 나바레떼에서 아소프라까지를 목표로 했다. 아소프라는 2인실 알베르게가 있다는 정보에 가슴이 설렜다. 게다가 오늘은 200km를 돌파하는 날이다. 미쉐린 가이드북을 따르지 않은 탓에(혹은 덕분에) 계속 길 중간에 큰 도시를 지나치게 된다. 오늘 지나간 곳은 나헤라. 큰 도시나 마을은 알베르게나 식당, 상점이 많기 때문에 선택지가 많다는 점은 강점이다. 하지만 그만큼 비싼 경향이 있고, 순례자들이 몰려들어 오히려 숙소가 빨리 마감되기도 해서 개인적으로는 선호하지 않았다. 


나헤라를 통과해 도착한 아소프라는 마을의 끝에서 끝이 100m 남짓밖에 안되어 보이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리고 듣던 대로 알베르게의 침실은 2인실이었다. 양쪽에 두 개의 침대와 발치에 수납장이 있는 작은 방이었는데 카미노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훌륭한 숙소였다. 게다가 넓은 마당에는 발을 담글 수 있는 작은 풀까지. 시설만 놓고 보면 단연 최고였다. 수십 명의 순례자들이 풍기는 땀냄새, 발 냄새도 없고,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머리맡에는 개인용 등도 설치되어 있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숙소는 이렇게 만족스러웠지만, 내 마음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순례 일주일이 지나면서 조금씩 몸은 익숙해졌지만, 아니 그래서인지 마음은 점차 불편해졌다. 나는 나 자신과 대면하기 위해서 순례길에 나섰는데, 점차 혼자인 시간보다는 친구를 사귀고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즐기기에는 내 마음은 너무나 작아져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2인실에 함께 묵게 된 순진 씨와 다음 날 함께 걷게 되는 일조차 부담스러웠다. 

day10. 아소프라-빌로리아 데 리오하:29.7km

아소프라에서 출발한 날은 처음으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다. 뭔가에 심술이 난 것처럼 마음이 편치 않았던 나는 그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묵겠다는 치졸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날의 여정은 역시 큰 마을인 산토 토밍고 데 라 칼사다를 지나 몇 km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작은 마을들을 통과하게 되어 있었다. 대충 그 마을 중 하나에 묵으리라 마음을 먹고 며칠 동안 함께 했던 순진 씨에게도 오늘은 혼자 걷고 싶다고 말을 애써 태연히 건넸다. "어디선가 만나게 된다면 만나고" 라고 말을 했지만, 되도록이면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중 가장 긴 거리를 걸어 빌로리아에 도착했을 때, 도저히 더는 걷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묵었던 일이 내게는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이 되었다.

사실 빌로리아는 별 볼 일 없는 곳이었다. 마을은 정말 작았고, 가게도 없었다. 마을을 한 번 둘러볼까 나서는 나와 마주친 다른 순례자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없어(There is Nothing)"라고 말해주었다. 가게가 없기 때문에 식사는 당연히 알베르게에서 해야 했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셔도 나중에 도네이션 박스에 알아서 돈을 넣으면 됐다. 빌로리아의 특이한 점은 산티아고 순례 후 "순례자"라는 소설을 썼던 파울로 코엘료가 묵었던 숙소가 있다는 것 정도였다. 알베르게는 단 한 개. 내가 묵었던 알베르게 빌로리아뿐이었다. 식사는 별다른 메뉴 없이 빠에야와 와인. 하지만 둘 다 훌륭했다. 알베르게의 운영자인 호스피탈레로는 남녀 커플이었는데, 식사 준비를 마치고는 순례자들에게 환영의 말을 하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버렸다. 순례자들은 식사를 하고 알아서 설거지를 한 다음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미리 준비되어 있는 차와 비스킷을 먹고 도네이션 박스에 알아서 돈을 넣고 떠나면 되는 것이다. 활짝 웃으며 순례자들을 맞고, 밥을 차려준 뒤 손을 흔들고 떠난 호스피탈레로들도 인상적이었고, 순례자들끼리 알아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떠나는 일도 왠지 즐거웠다.

순례자 스탬프인 세요도 재미있다.

그곳이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아일랜드에서 온 다니엘 때문이다. 알베르게 앞 도로에 빨래를 널어놓고 말리다가 이야기를 나누게 된 그는 심리치료사이고(오우, 나도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데!), 티베트 불교와 명상을 공부했으며(나는 티베트 난민 마을에 살아. 불교와 명상 공부도 하지.), 네팔에서 자원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네팔은 세 번 가봤어.). 게다가 철학 공부를 하기도 했다고 하니(내 전공이 철학인데!) 한국 사람이건 외국 사람이건 이렇게 완벽하게 관심사가 같은 사람을 처음 만났다. 한참을 그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사람이 많은 것이 싫에서 빌로리아에 일부러 묵었고, 다리가 심하게 아파서 하루에 15km 이상 걷지 않을 예정이고,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서 온 것이라 산티아고까지 가지 않고 레온에서 아일랜드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아쉽게도 그와는 연락처도 주고받지 못했다. 많은 다른 인연들처럼 그도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그 덕분에 아일랜드를 생각하면 다니엘이 떠오르고, 그래서 왠지 아일랜드가 좋아져 버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완벽히 혼자가 되겠다던 나의 계획은 실패했다. 나름 최대한 멀리 걸었던 빌로리아에서 도착한 지 5분 만에 순진 씨와 마주쳤기 때문이다(우리, 뭔가 취향이 같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가 되겠다는 둥 하는 생각이 바보 같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로 나는 억지로 혼자되기 따위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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