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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Sep 12. 2016

나의 산티아고記-18

day15. 까스뜨로헤리스-보아디야 델 카미노:17km

파라다 알베르게 이후 며칠 동안 줄곧 혼자 걷고 있다. 이날의 여정은 비교적 짧은 17km. 초반에 만났던 한국 친구들 몇은 부르고스에서 쉬고 온다고 한다. 기본적으로는 매일 걷는 여정이지만, 각자의 체력과 일정에 따라 중간에 하루 정도 더 쉬거나 간혹 중간에 다리가 아프거나 하는 이유로 버스를 타고 한 두 구간을 통과하는 순례자도 있다. 처음 인도에서 유럽으로 출발할 때부터 내가 바란 것은 딱 두 가지인데, 하나는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여정을 다 걸어서 마칠 것, 그리고 내 짐은 내가 끝까지 메고 갈 것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해지면서 각 여정을 구간만 걷거나, 차를 타고 지나거나, 혹은 짐을 다음 목적지까지 배달해 주는 '모칠라 익스프레스' 같은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었다. 순례자라고는 하지만 과거의 순례자와 달리, 내비게이션 앱과 최신식 경량 가방을 메고, 줄줄이 늘어선 알베르게와 가게, 식당들을 통과해가는 지금의 순례자들이 어디까지가 순수한 순례자라고 할 수 있을지 경계는 희미하다. 그래도 나름 나만의 최소 기준을 그 두 가지로 정했고, 결과적으로는 그 기준을 지켰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보아디야 델 카미노까지는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내내 참 아름답다고 감탄을 했는데 이날은 왠지 쨍쨍한 햇빛에 지쳤던 기억만 난다. 게다가 이 마을은 큰 도로 옆으로 굉장히 길게 이어지는데, 길고 긴 골목을 통과하며 숙소를 알아봤지만 웬일인지 문을 닫거나, 이미 순례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혹시 이곳에서 묵지 못하는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날 무렵 마을 광장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순진 씨와 다른 한국인 몇 명, 그리고 캐나다에서 온 노미를 만났다. 다행히 그들이 3시에 문을 여는 알베르게 티타스를 알려주어 맥주를 한 잔 마시고 그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는데, 부산에서 온 문정이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출발 초반부터 무릎 통증을 호소하던 문정이는 하루 이틀 휴식을 취하고, 대신 한 두 구간을 버스로 이동했는데 그날 도착한 알베르게에서 입장을 거절당하고 쫓겨났다는 것이었다. 순례자들이 받는 세요(스탬프)는 매번 밑에 날짜를 적어주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그 날짜만 살펴봐도 매일 걸어서 왔는지 혹은 건너뛰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알베르게의 호스피탈레로는 문정이의 크레덴시알을 보고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은 '진정한 순례자'가 아니라며 받아주지 않았다.


'진정한 순례자'가 되는 조건이 무엇일까.  문정이를 쫓아낸 그 호스피탈레로의 처사가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배낭을 맡기지 않고, 끝까지 걷기로 마음먹었던 내 결심이 옳았다고 느낀 것도 사실이다. 이런 모순적인 감정은 순례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단체 순례, 혹은 관광객을 볼 때마다 느꼈던 은근한 자부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순례증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 200km만을 걷는, 말하자면 카미노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는 순례자들을 볼 수 있다. 이미 수십일을 걸어온 생장(에서 출발한)파에 비해 아직 새것인 복장과 흙먼지가 내려앉지 않은 상큼한 워킹화, 그리고 뭔가 짐으로 가득한 배낭.(몇 주를 걷다 보면 이미 불필요한 짐은 버려진 지 오래고, 짐 싸는데 숙달되어 배낭이 점점 간소해진다) 이런 신규 순례자들은 산티아고를 200km 가까이 남겨놓은 지점부터 급격히 늘어난다. 심지어 배낭은 관광 대행사에서 차에 실어 순례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마다 먼저 가서 대기하고, 홀가분하게 물 한 병만 들고 길을 걷는 한국인 순례자 그룹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우리를 한눈에 보자마자 "아이고, 생장에서부터 걸어오셨나 보네요?"라고 말했다. 물론, 꾀죄죄함을 가릴 수 없는 옷차림과 얼굴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초라한 옷차림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지만, 자랑스럽기도 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내내 걸었다는, 내 온몸으로 그 공간과 시간을 통과했다는 자부심을 굳이 숨길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것으로 나는 진정한 순례자가 되었을까. 문정이를 쫓아낸 그 호스피탈레로는 진정한 순례자만 우리 알베르게에 묵게 하겠다는 결심을 지키고 만족했을까. 진정한 순례자를 기준으로 한다면, 가톨릭 신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불교도를 자처하는 나 같은 사람이 가장 먼저 쫓겨나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사실은 가톨릭, 기독교, 불교, 무교 그리고 무슬림도 걷고 있는 길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 모든 사람들은 그 길을 사랑하고 다시 걷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이날 묵은 알베르게는 아침 기상 시간에 성가를 들려주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날 저녁 며칠 만에 만난 순진 씨와 와인을 먹고 알베르게에 돌아와 수비리에서 만났던 노미와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다. 다음날 아침 은은히 울려 퍼지는 성가를 들으며 깨어나서야 전날 밤 나의 취중 토크를 노미가 눈치채지 않았기를 빌었다. 

이곳은 특이하게 알베르게에 등록할 때 크레덴시알에 바로 세요를 찍어주지 않고 나중에 돌려주겠다며 모두 걷어갔다. 숙소에 있던 순례자들은 크레덴시알을 모두 그날 저녁 돌려받았지만, 모처럼 순진 씨와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나중에 숙소에 들어간 나는 크레덴시알 따위는 까맣게 잊고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아침에도 차와 비스킷을 챙겨 먹고 씩씩하게 먼저 길을 나섰다. 그리고, 2km 남짓 걸었을 때에야 크레덴시알을 넣고 다니던 복대가 허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없으면 알베르게에서 묵을 수 없고, 당연히 순례가 불가능해진다. 단 10미터도 뒤로 가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눈물을 머금고 뒤를 돌아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마침 한국인 친구들이 대신 내 크레덴시알을 챙겨 들고 나를 찾아 나서는 참이었다. 덕분에 무사히 크레덴시알을 찾아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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