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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anii Sep 26. 2016

나의 산티아고記-19

day16. 보아디야 델 카미노-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25km

산티아고 길을 걸은 지 1년이 지났다. 1년이 지난 후에야 기억을 더듬어 써 내려가는 여행기에는 분명 많은 소소한 사건들, 감정들이 지워져 희미하다. 그런 만큼 강렬한 기억들만이 줄거리처럼, 생선의 등뼈처럼 남아 있다. 매일매일 길을 걸으며 그날의 감상을 곧바로 인터넷 카페에 올려 정보를 나누는 순례자들도 있지만 그건 내 방식은 아니었다. 어차피 산티아고에 관한 엄청난 정보들이 인터넷에 있는데 나까지 보탤 필요가 뭐란 말인가. 그러니까 이 여행기는 산티아고에 관한 정보를 얻기에는 적절치 않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부분은 정확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 내 기억의 등뼈들.

보아디야 델 카미노에서 출발해 걷는 아침 길은 운하를 따라 걷는 아름다운 길이다. 이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첫 번째 마을인 프로미스타까지 가는 길은 그러나 그동안 걸은 길 중 가장 불편한 길이기도 했다. 이유는 바로 전날 시작된 생리 때문이었다. 그렇다. 많은 산티아고 여행기나 카페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지만 여성 순례자들에게 30일이 넘는 산티아고 여정이란 한 번은 생리를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운이 없으면 시작과 마지막 두 번을 겪을 수도 있으니 불운하다고도 할 수 있다. '불운'이라고 까지 표현하는 것이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걷는 내내 화장실이 어디인지 찾아 헤메야 하고, 걷기를 방해하는 묵직한 아랫배와 함께, 사람에 따라서는 생리통에 시달릴 테니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걸어야 하는 순례자로서는 힘든 시간임에 틀림없다. 프로미스타를 향해 가던 나 역시 한시라도 빨리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운하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것이 고작 이 한 장의 사진, 그리고 남은 기억은 프로미스타 초입에서 발견한 작은 카페에서 카페 콘 레체를 시키고 이용한 화장실 안의 풍경 같은 것이다. 어째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기억이 화장실 따위인 거냐.(지금도 매우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다) 망했다. 

그래도 프로미스타를 지나고 나니 가을 풍경과 그 가운데 서있는 순례자 조형물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각 지방정부가 마련한 개성 있는 조개 표시나 화살표 외에도 이렇게 순례자들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간간이 서 있다. 이른 새벽길을 나서는 순례자들, 머리 위에서 그들을 수호하는 작은 별들이 있다. 

이날 저녁에는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의 성당에서 공연이 있었다. 제임스 클라인이라는 기타 연주자가 순례자들을 위해 만든 곡들을 연주해 주었다. 음악은 잘 모르지만, 그의 연주 안에는 어두운 새벽길의 고독,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바람의 교차, 땀과 눈물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 자신도 산티아고 길을 걷고 만들었다는 그 곡이 이젠 기억나지 않지만 연주를 들으며 무언가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만은 기억한다.


day17.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플라리오스:25.8km

이날은 처음으로 미쉐린 가이드북을 초과했다. 녀석(?)이 추천하는 23km 지점의 레디오스 대신 2.8km를 더 가서 묵게 된 것이다. 이젠 몸이 완전히 적응한 것 같다. 매일 25km는 기본으로 걸을 수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엄청난 열량을 소모할 것이 분명한데도(13kg의 배낭을 메고 산과 들을 25km씩 매일 걷는다면 누구나 할 법한 기대인) 살이 빠지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몸은 더 튼튼해졌지만, 다리에는 알이 배기고, 매일 마시는 맥주와 와인 덕에 뱃살도 여전했으며, 굶주림과 피로 끝에 먹어치우는 식사와 간식으로 얼굴은 전보다 더 동그랗게 되었다. 

미국 배우 마틴 쉰이 출연하고 그의 아들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연출한 영화 'The Way'는 산티아고 순례에 나섰다가 조난을 당해 숨진 아들을 대신해 아들의 유해와 배낭을 들고 순례를 떠나는 미국인 안과의사의 이야기다. 이 길에서 그는 글이 써지지 않아 길을 떠난 아일랜드 작가와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떠난 미국 여성, 그리고 동생 결혼식에서 예전 양복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살을 빼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는 아내 때문에 운동삼아(!) 카미노를 걷게 된 네덜란드 남성을 만난다. 영화를 볼 때는 '운동삼아'라는 말에 웃었지만 실제로 산티아고에 도착해 순례증을 받을 때 적는 신청서에는 순례 목적 중 하나로 'Sports'가 적혀있다. 어쨌든 100kg은 족히 나갈 것 같은 그 네덜란드 남성은 결국 마지막 도착지인 피니스테레에서 여전히 그대로인 배를 만지며 '양복은 새로 맞춰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한다. 

그때 눈치챘어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살을 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물론 순례 후 몇 kg이 빠졌다는 후기를 인터넷 카페에서 본 적이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냥 나는 즐겁게 먹고, 마시며, 씩씩하게 걷기로 했다. 당연히 참 행복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해서 살이 빠지지 않듯이, 순례를 마치고 나서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 길을 걷고 삶이 바뀌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순례자'를 써서 세계적인 작가가 된 파울로 코엘료가 그런 사례일지 모르겠다.(순례보다는 '순례자'를 쓴 것이 그의 인생을 더 바꿔놓은 것 아닌가 싶지만) 혹은 인터넷 서점에서 산티아고를 검색어로 해서 찾아볼 수 있는 많은 책들의 저자들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런 기대가 내게는 없었을까. 처음 유럽을 향해 떠날 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 모습이 어떨지 상상을 하며 떨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원래의 내 자리, 인도의 조그만 산동네 티베트 난민촌으로 돌아와 있다. 그럼 내 인생은 그대로인가. 대답은 그렇다와 아니다 이다. 살도 빠지지 않고, 내 삶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그 안에 답이 있다. 

카미노가 모두 산이나 숲길만 지나는 것은 아니다. 때론 고속도로를 통과하기도 하고, 국도변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이른 아침, 줄지어 걷는 순례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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