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7.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25.8km
전날 숙소에서 만난 캐서린 아주머니는 알고 보니 순례자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만나는 이들마다 볼 뽀뽀를 해주고, 무엇이든 가진 것을 나누려고 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와도 친구가 되는 붙임성 좋고 사랑스러운 미국 아주머니였다. 캐서린은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는 내게 치즈와 올리브와 초콜릿을 나눠주었다. 거듭 사양하는 내게 "정말 필요가 없는 거니, 아니면 나한테 미안해서 그러니?"라고 정곡을 찔렀다. 결국 나는 캐서린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다니 새로운 발견이었다.
캐서린은 그야말로 긍정의 아이콘이었다. 순례길 초반에 빈대에 물려 온통 물린 자국으로 가득했지만 호스피탈레로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자신을 도와줬는지만 얘기했다. 나와 인사를 나누고는 처음 한 말은 "넌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니?"였다. 물론 사실일리가 없다. 내 영어는 그냥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캐서린 아주머니는 무엇으로든 장점을 찾아 칭찬을 하는데 탁월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는 너무 많다며 가진 음식을 줄곧 나눠줬던 캐서린.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다시 만나 껴안고 인사를 나눴는데 "여기서 돌아다니다 보면 계속 마주칠 테니 작별인사는 아직 하지 말자"라고 하고는 결국 다 만나지 못하고 말았다. 카미노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은 종종 그랬다.
어쨌든 그날 아침, 캐서린 아주머니의 볼 뽀뽀와 먹을거리 선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인지 나는 길고 긴 길을 혼자 걸으며 많이 슬퍼졌다. 다음날이 추석이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그리워졌다. 두고 온 모든 것들이. 내 방 안의 풍경과 그 안의 모든 물건 하나하나와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이런 날이면 '나는 왜 여기를 걷고 있지?'라고 묻고 또 물었다. 물음과 물음 사이는 눈물로 메웠다. 모든 순례자들에게 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들 모두 어느 순간에, 어느 곳에서는 걸으며 눈물을 흘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day18. 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쁠라리오스-베르키아노스 델 레알 카미노:23.7km
추석 아침. 명절을 맞아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이상한 느낌에 이른 새벽 일어나 침대를 살펴보니 어디서 피를 빨아먹은 건지 통통하게 부푼 빈대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잠은 싹 달아나고, 잠자는 순례자들을 깨울까 싶어 밖으로 나가 추위에 떨며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빈대를 보고 나서 다시 잠자리에 들 수도 없어서 별 수 없이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짐을 꾸려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