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banii Oct 17. 2016

나의 산티아고記-23

Cruz de Ferro

day24. 아스토르가-라바날 델 카미노:20km

산티아고 순례를 준비하면서는 자연스럽게 먼저 순례를 다녀온 이들의 후기를 읽게 마련이다. 책으로든 인터넷 카페에서든 남들의 경험을 통해 미리 그곳에 가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보며 설레기도 한다. 원래 여행은 떠나기 직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가. 비행기표를 끊은 날부터 그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날 밤까지가 아마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나 역시 비행기를 예약한 뒤 틈틈이 여행 정보를 모으며 행복한 상상에 잠기곤 했는데, 여러 가지 유용한 정보와 경고 가운데서 GPS 지도에 대한 것이 눈에 띄었다. 고도까지 표시된 데이터를 인터넷 카페에 올려놓은 분들도 있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인도의 열악한 인터넷 사정 덕분에 도대체 GPS 지도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미처 파악을 하지 하고 출발해야 했다. 그 후 첫 목적지인 영국의 동생네에 머물면서 제대로 이해를 하게 되었다. 이유는 그랬다. 동생 가족과 함께 런던 나들이를 다녀와서 그날 찍은 핸드폰 사진을 구경하는데 사진마다 찍은 장소가 표시되어 있는 것이었다. 내 핸드폰은 인도에서 쓰던 심카드밖에 없었으므로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이 아니면 인터넷이 안되고, 전화 역시 당연히 쓸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사진 찍은 장소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지? 나중에야 GPS 기능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고, 미리 지도를 다운로드하여 놓으면 인터넷과 상관없이 어디서나 현재 위치와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다운로드한 앱이 Maps me다. 아래의 지도에 별표가 되어 있는 곳들이 내가 35일 동안 묵었던 곳이다. 매일 아침이면 미쉐린 지도와 함께 이 지도를 살펴보며 그날의 여정을 계산했다. 둘 사이에 가끔 차이가 있기도 했지만, 수시로 길을 잃고, 강도나 맹수들을 만날까 두려워했을 중세의 순례자들에 비하면 내가 갈 길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이 지도 덕분인지 순례자들이 흔히 저지른다는 길을 잃는 실수를 별로 하지 았았는데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불만이란 Maps me가 목적지까지의 도착 예정시간을 자가용, 버스/기차, 도보 순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기껏해야 2-30km 떨어진 나의 목적지가 차로는 3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는 걸 매일처럼 확인해야 했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가면 금방 갈 곳인데, 우리 왜 이러고 있지?" 부은 발과 아픈 무릎을 주무르며 연신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금방 갈 수 있는 곳을 35일 동안 걸어서 갔다.

라바날에서 미사에 참석했던 오래된 성당


day25. 라바날 델 카미노-몰리나세카:24.5km

이날은 다른 날 보다 좀 더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 유명한 Cruz de Ferro 철 십자가 때문이었다. 카미노에는 곳곳에서 순례자들이 기도를 할 수 있는 십자가들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는 것만으로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날 지나는 철 십자가는 카미노 여정 중 가장 높은 1504m에 세워져 있다. 그것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여기서 기도를 하고, 고향에서 가져온 돌이나 기념이 될만한 물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내려놓고 간다. 이 곳에 그런 소중한 물건을 내려놓기 위해서 집에서부터 고이 챙겨온 것이다. 나도 기념이 될 물건을 가지고 갔다. 티베트 사람들이 길 떠나는 사람의 축복과 안녕을 빌거나, 감사를 표할 때 쓰는 흰색 스카프, 카닥을 다람살라에서부터 챙겨갔다. 바로 이곳 Cruz de Ferro에 남겨두기 위해서.


라바날에서 출발할 때부터 날이 흐렸다.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오르다 보니 비인지 안개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생장에서 발레리아가 준 비옷을 꺼내 입고 언제쯤 철 십자가가 나타날까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 높이 솟은 십자가가 나타났을 때는 비바람이 치고 있었다. 생각보다 높은 곳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그 십자가를 보는 순간 마음이 울컥해졌다. 수시로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새로 얻은 지병 같은 것이었다. 십자가에 다가가 준비해온 카닥을 묶고 Free Tibet이라고 인 팔지를 끼웠다. 그곳에 남아있는 들꽃, 메모, 조개껍데기, 그리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사진들. 보이진 않지만 남겨져 있는 간절한 마음들에 내 마음도 한 조각 던져두고 왔다.

몰리나세카에 도착하니 비도 그치고...


이전 22화 나의 산티아고記-2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