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banii Feb 06. 2017

나의 산티아고記-25

"오초 오초스" 오초는 8!

day28. 트라바델로-라 파바(15km)

이 날의 목적지는 라 파바. 미쉐린 가이드북이 제안하는 곳은 오 세브레이로라는 1330미터에 위치한 마을이지만, 나의 경로는 이미 미쉐린 따윈 염두에도 두지 않고 라면을 먹기 위해 카카벨로스에 머물렀을 때부터 틀어져 있었다. 대신 라 파바에 묵기로 한 것은 그곳의 알베르게를 수도원에서 운영하며, 저녁 미사 때 (심지어!) 세족식을 하고, 순례자들끼리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눈다는 한 여행 책자의 정보 때문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내 평생 참가한, 그리고 참가할 모든 숫자보다 더 많은 미사에 참석했지만(그래 봤자 열 번도 안됩니다.) 라 파바에서의 미사가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 

지도와 GPS 맵을 한참 들여다본 후에 겨우 찾은 알베르게는 아담하고, 조용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빨래를 널고, 목을 축이러 나서니 동네 카페 앞에 순례자들이 진을 치고 앉아서 맥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은 Wifi. 이런 분위기를 아쉬워하는 순례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만해도 첫 인도 여행을 나섰던 2007년에는 며칠 걸러 한번 pc방에서 긴급한 연락이 없는지 메일을 확인하는 게 고작이었던 시절을 보냈건만 지금 인도 여행자들은 오자마자 로밍을 하든, 유심칩을 구매하든 wifi도 필요 없을 정도로 인터넷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어쨌든 Wifi 비밀번호 확보는 알베르게의 명당 침대 사수만큼이나 중요한 일일 터, 지체 없이 카페 주인아주머니에게 비밀번호를 물었다. 아주머니의 대답은 "오초 오초스!!" 뭐지, 오초는 8인데... 8을 두 번 하라는 얘긴가? 멍한 표정을 짓자 손수 적어 주신다. 정답은 8이 여덟 개!! 아하~ "오초 오초스!!" 아마도, 스페인어를 다 잊어도 8이 오초라는 것은 절대 잊지 않으리라.

남들보다 짧은 거리를 걸어온 탓에 도착도 빨랐다. 일찌감치 알베르게 주방에 남겨진 순례자들의 식재료를 보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고 미사 시간을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다. 마당에 자리한 작은 성당 건물에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들어가 보니 불도 켜져있지 않고 구경삼아 둘러보는 순례자가 한 명 있을 뿐이다. 호스피탈레로에게 물어보니 신부님이 안 계신다고 한다. 당분간인지, 아예 떠나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미사를 기대하고 온 내게는 적잖이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산 중턱의 조용한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밖에.

day29. 라 파바-트리아카스텔라(26.5km)

계절이 가을로 바뀌면서 해가 뜨는 시간도 늦춰지고 있다. 해 뜨는 시간만 기다리다가는 출발 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새벽에 출발하는 날이 늘어난다. 순례길에서야 계절에 상관없이 매일 일정한 일정한 거리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일이지만, 사실 나는 해가 뜨고 지는 데 따라 생활하는 것이 주는 평온함을 사랑하는 편이다. 뭔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다람살라에서 살게 된 이후의 변화다. 북인도의 조그만 산골 마을 다람살라, 거기서도 중심가와 떨어져 살다 보니 밤문화는 옛말이 되었고, 안과 밖의 차이가 그다지 없는 인도의 건물에서는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모든 일들이 바로 곁에서인 것처럼 일어난다. 그러니 일기에 민감한 삶을 살게 되었는데, 자연스레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집에 조용히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가끔은 별들의 소리를 듣고, 베란다 앞을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의 춤을 구경하면서.

그렇게 새벽부터 길을 나선 덕에 오 세브레이로에 도착하니 그곳에서 묵은 순례자들도 이제야 출발하는 참이었다. 그날따라 안개비가 몰아쳐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꽤 크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별로 후회를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여기서 묵었어도 좋았겠군'하는 생각은 들었다. 안개비 때문이었는지, 오 세브레이로에서 내려오는 길이 무척 잘 닦인 대로였던 탓인지 이날은 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목적지인 트리아카스텔라가 별 세 개를 뜻하는 이름이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는 정도인데 내용은 잊어버렸다. 그 이야기를 책에서 읽고 스텔라가 별을 뜻하는 라틴어가 어원이라는 것을 떠올렸다는 정도다. 똑똑한 페북이에게 기록해 뒀다면 해마다 알려줬을 텐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전 24화 나의 산티아고記-2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