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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벳 Nov 24. 2023

김장특공대, 출동

김장으로 친정엄마의 건재함이 증명된다


“올해 김장은 어떻게 하세요?”


11월에는 어느 집이나 인사처럼 하는 말이 있다. 추석, 설날에 버금가는 이벤트이자 가족행사인 김장. 이미 끝낸 집도 있을 것이고 아직 김장을 앞둔 집도 있을 것이다. 김장을 떠올리면 언제 하나 라는 생각에 은근히 마음이 복잡하다. 우리 집은 예년보다 빨리 김장을 끝냈다. 일찌감치 끝내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결혼 13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친정으로 1박 2일의 김장여행. 김장 결전 전우인 남편이 퇴근하고 나서 밤에 출발했다. 막히지 않아 뻥뻥 뚫린 고속도로를 지나 빠르게 도착. 친정엄마는 이미 아침에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절인 배추와 김칫소를 준비해 놓았다. 함께 모여 간단히 맥주 한잔을 먹으며 (알쓰인 나는 무알콜맥주로) 내일 있을 결전에 대한 엄마의 브리핑을 듣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후다닥 친정엄마표 아침을 먹고 작업복으로 세팅, 김장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이미 역할 분배는 어제의 브리핑으로 정리가 된 터. 총감독인 친정엄마의 진두지휘 아래에 나와 남편은 절여진 배추에 김칫소를 넣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우리가 버무린 김치를 확인하고 마무리를 해서 김칫통에 넣는 임무는 친정엄마의 몫이다.


“나 어릴 때 엄마 도와서 김장 많이 해봤어. 그래서 김치 버무리는 거 잘해.” 남편은 친정에서 가져온 김장김치와 수육을 먹을 때마다 이야기했다. 그 말에 아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 세상에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어찌나 손이 빠르고 야무진지. 김칫소를 배추 안에 찹찹 넣고 버무리니 빨갛게 맛깔나 보이는 김치 한 포기가 금세 완성된다.


“어머나, ㅇ서방. 어쩜 이렇게 야무지게 잘해. 김치 색깔도 좋고.”

“오~진짜 잘하는데? 나보다 잘하네. 역시 ㅇ장금이구만.”

칭찬을 듣는 남편은 씩 웃더니 신이 나서 더욱 열심이다. 우리는 계속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립서비스를 날린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하지 않던가. 남다른 손재주를 지닌 남편 덕분에 김장은 1시간 만에 끝이 났다.




김장은 겨울이 오고 있다 알리는 소식이다.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하는 11월 중순부터, 김장은 각 집안의 연례행사이자 추석과 설 사이에 있는 이벤트 이기도 하다. 김장이 어떻게 되는 가에 따라 1년간 맛있는 김치를 즐길 수 있는지 결정이 된다.


김장은 그 준비 과정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을의 햇 고춧가루 준비를 시작으로 젓갈과 마늘 구입, 엄마들의 김장 준비는 이미 몇 달 전부터 플랜이 짜여 있다. (미리 구입하면 좀 더 알뜰하게 준비할 수 있기에) 김장 날짜에 맞추어 김치를 담을 배추와 재료들을 준비한다. 예전에는 배추를 절이느라 시간이 거의 소요되었다면 요즘은 절인 배추 덕분에 그 과정이 좀 수월해졌다. (몇 년 전부터는 우리도 절인 배추를 쓴다.)


김장에는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모이거나 이웃이 함께 모여서 했다. 함께 재료를 준비하면서 배추를 절이고 김칫소를 만들고 담기까지. 복잡한 절차와 많은 수고가 담긴다. 힘든 과정에 ‘내년에는 김장 다시는 안 한다. 사 먹는다’ 하지만 막상 막 담은 김치를 수육과 함께 먹으면 ‘그래. 그래도 담은 김장김치가 맛있지.’ 하며 벌써부터 내년의 김장에 대해 의논한다.




올해의 김장은 더욱 특별하다. 작년에 갑작스러운 친정엄마의 사고로 다리가 골절이 되어 수술과 입원을 하게 되었고 꽤 오랜 재활 기간을 보냈다. 그런 상황에서 감히 김장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작년의 김장의 빈자리는 이모들의 김치가 대신했다. 이모의 진한 젓갈 내음이 가득한 콤콤한 전라도식 김치를 먹으며, 엄마의 새콤하고 아삭한 김장김치가 어찌나 그리웠던지.


일 년 남짓의 기간 동안 한 달에 한 번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 엄마의 건강의 소중함을 온 가족이 느꼈다. 아팠던 다리도 꾸준히 재활과 운동을 하면서 순조로이 잘 회복할 수 있었다. 엄마가 건강을 잘 회복해서 다시 김장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친정엄마표 수육과 우리의 손맛이 담긴 2023 김장김치


김장이 끝나고 바로 먹었던 김치도 맛있었지만, 집에 와서 엄마가 싸준 김치와 수육을 먹으며, 다시금 김장하기를 정말 잘했다 여긴다. 아삭아삭한 배추와 살짝 느껴지는 젓갈의 풍미, 적당한 맵기와 짜지 않고 적당한 간. 그래 이 조화는 절대로 엄마가 있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맛이지. 김치 버무리기는 나와 남편이 했더라도 양념소를 준비하고 만드는 것은 100% 엄마의 손맛이 아니면 안 된다. 언제 다시 먹을 수 있을까 그리웠던 친정 엄마의 김치를 먹는 지금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김치로 엄마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존재감이 있는지 다시금 깊이 느끼는 중.


다음날 전화로 ”김치는 어때? 어제저녁에 수육이랑 김치랑 같이 먹었어? “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에서 김장의 고됨보다는 잘 치러 냈다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들려온다. 김장이 엄마에게는 여전히 본인의 영향력과 존재감이 건재하고 있음을 다시 확인하고 깊이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친정엄마의 김치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위와 외할머니의 김치만 먹는 손주 덕분에 올해부터 다시 개시하는 김장은 당분간 이어지겠지. 내년에도 친정엄마와 나, 남편은 김장특공대로 다시 뭉칠 예정이다.




엄마. 다시 엄마표 김장김치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우리, 엄마 김치 없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아프지 말아요. 내가 더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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