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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벳 Dec 29. 2023

결국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사고 말았습니다

어서오세용. 2024년


오랜만에 들린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주문 후, 굿즈를 보다 눈에 띈 다이어리 코너. 스타벅스에 다이어리가 등장했다는 것은, 이제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았음과 동시에 새해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이어리에 자연스레 눈길이 향하고. 카멜, 샌드, 검은색 각각의 고운 자태가 영롱하게 빛난다. 다이어리 컬러 예쁘게 잘 나왔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깊이 누르고 있었던 이건 사야 돼 증후군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매번 연말이 되면 고민하는 한 가지. 다이어리를 살 것인가, 사지 않을 것인가. 지난 경험을 돌아보면 어차피 있어도 한 두 달 쓰고 안 쓸 텐데. 그럴 바엔 핸드폰 스케줄러를 사용하는 게 더 낫지 하면서 스스로 납득시켰다. 그렇게 매년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구입하던 호구는 작년에는 눈을 질끈 감고 겨우 버텨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참을 수 없다. 다른 컬러도 아니고 카멜이라니. 스타벅스에서 이렇게 예쁜 다이어리가 나온 적이 있었던가. 카멜 덕후의 시선을 사로잡아 버렸다. 최애 컬러에 보고 있기만 해도 흐뭇. 머릿속에 예쁜 다이어리에 차곡차곡 글씨를 써 내려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참 멋지네. 하지만 다이어리를 얻으려면 프리퀀시라는 미션을 완수해야 한다. 커피는 늘 아메리카노 어쩌다 라테를 마시는 사람이 어떻게 프리퀀시를 모을 수 있을까. 억지로 미션 음료를 마셔야 하나. 그건 무리다.


“A-76번 고객님! 주문하신 따뜻한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파트너의 콜링에 정신이 퍼뜩 들면서, 주문한 커피를 들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여운이 가득한 아쉬움을 남긴 채로.




다이어리 구입은 새해를 맞이하는 의식 같은 행동이다. 전과는  다른 시간을 만들어가고픈 소망이 담긴 다짐이기도. 새 다이어리를 펼치고 사각사각 기록하면, 새로이 한 걸음을 내딛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작년보다 더 멋진 올해를 만들어가자라고 스스로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라고 할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다이어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자신의 취향을 고스란히 담아낸 장소에 손글씨로 또박또박 채워나가는 행위는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자신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페이지를 바라보며 드는 뿌듯함은 써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렇게 한 두 달이 지난다. 다이어리는 자신의 내면을 차곡차곡 채워나가고 있지만, 기록하는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다. 매일 쓰는 게 똑같거나 달리 쓸 내용이 없다. 다이어리는 점점 멋져져 가는데, 쓰고 있는 나는 막상 그리 멋진 사람이 아니라는 괴리감이 든다. 잘할 수 있어. 괜찮아 내일 더 힘내자라고 적는 말도 한두 번이지 계속할수록 지친다. 난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는 좌절감에, 마침내 다이어리를 쓰는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설렘으로 다가왔던 다이어리가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실은 다이어리가 아닌 내 마음이 변한 거지만. 결국 호기롭게 쓰기 시작한 다이어리는 어느새 책장 한 구석에 고이 자리한다. (이런 경험 최소 한 번은 있지 않나요?)




결국, 나의 손에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놓였다. 그 이후로도 눈앞에 계속 아른거리는 카멜색 우아한 아이에게 요동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예쁜 컬러는 금방 빠지기에 더 늦기 전에 프리퀀시를 도전하나 하지 말까 주저했던 시간을 지나며. 우연히 온라인 스토어에서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발견하고 단숨에 구매 버튼을 클릭했다. (프리퀀시를 모으지 않아도 된다. 럭키!)


카멜 컬러의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다이어리. 너 내꺼 하자


실제로 받아 본 다이어리는 너무 예뻤다. 설렘과 감동 그 자체. 안 샀으면 계속 후회했을 거다. 달콤한 캐러멜 컬러를 품은 커버와 몰스킨에서 제작한 특유의 깔끔한 속지는 어떻고. 위클리가 아닌 데일리로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말 그대로 취향저격. 올해도 역시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실망시키는 것은 나의 끈기일 뿐. 내년에는 반드시 꾸준히 기록하리라 다짐하게 만드는 너. 내게 오랜만에 와줘서 반갑고 참 고맙다.


깔끔한 속지는 말해 뭐해. 완전 내 취향


그동안 지속적이지 못했던 기록생활을 반성하며, 이 예쁜 아이와 어떻게 함께 해야 하나 고민했다. 실은 올해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글쓰기에 집중하다 보니 나만의 기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기왕이면 손으로 꼭꼭 눌러쓰면 차분하게 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번 다이어리는 나만의 영감노트로 정했다. 이에 따른 몇 가지 지침과 함께.


1. 꽉 차게 쓰려는 욕심을 내려놓자

한 페이지를 꽉 채우려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그대로 나열하지 않는다. 한 문단, 한 줄이면 어떤가. 매일 솔직한 느낌과 기억을 남기는 기록에 의미를 두자.


2. 매일 쓰는 루틴을 만들자

꾸준함에는 힘이 있다. 꾸준함이 매일이 되면 루틴이 된다. 짧은 시간에 적는 간략한 기록도 괜찮다. 읽은 책의 문장, 그에 대한 느낌도 좋다. 쓰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기며 습관을 들이자.


3. 다이어리보다는 영감 기록장으로

다이어리라는 한계를 두고 일상 기록을 하기보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 생각이 있다면 그대로 적어보자. 어떤 일에 대한 질문도 좋다. 영감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기록하고 저장하는 나만의 아카이브로 활용하자.


다이어리를 다시 쓰기로 하면서 정한 2024년의 목표. 읽고 느끼며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거창한 목표를 보고 하루하루 성장하며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라기보다,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느끼며 꾸준히 써나가는 일상을 누려보자.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남겨질지 기대가 되지 않는가.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책상 위에 고이 모셔두고 어서 새해가 오기를 기다린다. 생각날 때마다 한 장씩 넘겨보며 쓸까 말까 고민이 되지만. 참는다. 2024년 1월 1일까지.



다이어리 쓰기. 이제 3일 남았다
어서 오세용. 2024년





내년에 다이어리 인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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