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벳 Jan 13. 2024

한 그릇으로 비로소 삶을 다시 살아간다

Prologue 프롤로그


갓 만들어 낸 음식을 즐긴다.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그날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즐겁다. 특별한 맛이 아니어도 자체가 지닌 따뜻함으로 몸도 마음도 위로를 받는 느낌.


어느 날부터 반찬을 차리고 먹는 일이 부담스러워졌다. 결혼을 하고 육아 전쟁에 뛰어들면서 여러 반찬을 준비하고 식탁에서 우아하게 앉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후다닥 먹기 일 쑤, 결국 반찬들은 냉장고를 들락날락하면서 그 맛을 잃어갔다. 몇 번 젓가락질을 해보지도 못한 채 변하고 상해서 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아. 따뜻한 밥 먹고 싶다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을 꺼내어 먹는 게 싫었다. 차고 시린 반찬의 맛은 가뜩이나 식어버린 자존감을 한 없이 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들었다. 음식은 그저 살기 위해 먹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때부터 일까.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됨이.




스스로에게 사랑한다 말해주고 싶었다.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나에게 보내는 따뜻한 응원이 필요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이 바로 한 그릇이었다.


아이가 자라고 같이 밥을 먹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한 그릇은 더욱 힘을 발휘했다. 나와 닮아 입맛이 예민해, 즉석에서 만들어낸 따뜻한 음식 앞에서 비로소 수저를 드는 아이에게도 요긴했다. 심했던 편식도 많이 좋아졌다.



준비하는 과정은 심플하고 간단한 듯 하지만, 생각보다 정성을 많이 들인다. 차분하게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할 수 있고, 서두르며 진행하지 않아도 된다. 나름 고민하면서 다양한 레시피를 구상하기도.


밥을 먹는 동안 오히려 마음은 차분해졌다. 온전히 그 자체의 맛을 즐기는 시간을 누리게 되었다. 일관된 맛과 향에 집중하며 재료 하나하나의 식감과 고유함을 천천히 맛보는 과정을 즐기게 되었다.


이처럼 한 그릇은 나에게 살아가기 위한 도구가 아닌, 살아가게 하는 힘이자 힐링이 되었다. 더불어 삶의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그저 두서없이 일과에 치여 하루를 그저 살아내던 일상을 끊어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심플하지만 깊이 한 그릇을 음미하듯, 오롯이 삶을 즐기고픈 소망이 생겼다.




이제 한 그릇 음식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진출처 : Unsplash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