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벳 Jul 09. 2024

저 이제부터 까칠하게 살겠습니다

며느라기의 조용한 거리두기



불편함. 긴장감. 유독 참석할 때마다 힘든 모임이 있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네, 맞아요, 그렇군요’라고 하지만,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한다. 어서 집에 가고 싶다. 며느라기에게 왜 이렇게 시댁 모임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걸까.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고 나서 참았던 긴장감이 툭 끊어지는 순간, 머리가 지끈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주섬주섬 두통약을 찾아 먹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무튼 무사히 끝났다.



아니, 무사히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며칠 뒤에 단톡방에는 폭풍 카톡이 연속으로 울린다. 조용한 가운데 올라오는 장문의 카톡. 자신의 기분 나쁨을 핑계 삼아 퍼부어지는 날선말. 그와 동시에 방에 있는 이들의 고요한 반응. 가시 같은 말은 몇 년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보고 있으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분노. 문장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존중해 달라, 나를 무시하지 말라 라는 의미. 결국 누구 한 명이 먼저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내뱉어야 끝난다. 이러한 과정이 몇 년째 반복되며 이어지는 중.






처음에는 내가 잘못하고 부족한 걸까 생각했다. 학교에 다닐 때에도 회사에 다닐 때에도 들어본 적 없는 책망. 사사건건 내뱉는 트집은 없던 자존감도 더 낮아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원래 그런 분들이라고 남의 편은 말했다. 그러니까 포기하라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고. 마음에 담아두면 우리만 손해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 이해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말은 마음 깊숙이 남아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흔적을 남겼다. 그렇게 며느라기는 점점 더 마음을 감췄다. 앞에서는 마스크를 쓴 듯이 웃으며, 속으로는 스트레스성 만성 질환을 달고 살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솔직히 따지고 보면 그리 잘못한 일은 없다. 우리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고, 받아들이는 이는 다르게 해석했다는 게 문제이지만. 지극히 평화주의자이자 부부 간에도 다툼이 거의 없기에,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빨리 끝내버리자 하는 마음에 먼저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그러니까 앞으로 잘해라는 패턴의 반복.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과인가. 한쪽의 일방적인 요구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건 결국 우리였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점점 더 심해졌다. 사사건건 트집에 선을 넘는 무례함. 본인이 기분 나쁜 건 너희의 태도 때문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계속되는 가스라이팅에 허우적 대고 아파하면서 과연 이렇게 하는 게 맞는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혹은 사회성이 높은 척을 하려고, 자신에게 매일 독을 주입했던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참아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무례한 상황이라면, 굳이 참고 견딜 필요가 없다. 무례한 사람은 아무리 당장 맞춰줘도 곧 탈이 나기 때문이다. (p. 183)


무례한 사람을 만나서 가장 최악인 것은 상황 그 자체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 기분이 나빠진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니 꼭 기억해야 한다. 내 기분은 내가 지켜야 한다. 누가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다. 괜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참고 견디지 마라.


“기분이 나빠지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p. 184)


- 원래 어른이 이렇게 힘든 건가요 (김종원 저) -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지. 그리고 깨달았다. 아무리 맞춰 줘도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만날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감시, 거슬리는 점을 찾아내려 한다는 걸. 나는 이렇게 속상한데 너도 좀 속상해봐라는 건가. 너희가 행복하면 되었다고 하면서 갑자기 상처를 주는 일이 반복되면서 더욱 입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그 속에서 반드시 단점을 찾아낼 거란 걸 말이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이 어느새 10여 년. 반복되는 패턴 도 여전하다. 남편도 마흔 중반이 들어서니 솔직해지더라. 그저 우리가 참자, 참아야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라며 달래던 그가. 어느새 자기가 먼저 서운함, 속상함에 대해 말을 하고 불만 섞인 말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남의 편이 아닌 내 편이 된 남편) ’ 그래. 당신도 이제 내 마음을 이해하겠군요 ‘라는 마음이 들면서.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을 참아가며,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던 아들의 모습에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하다.



이미지출처 : Unsplash



속상해하지 말자고. 억울해하지 말자고. 폭풍 같은 감정에 휘둘려 몸도 마음도 지쳐버리기 싫어졌다. 결국 지쳐버린 몸과 마음은 일상을 무너지게 한다. 이제는 그런 일이 있어도 그냥 지나가는 태풍 같은 거라 여기기로 했다. 함께 공감하는 이가 있기에 더 이상은 두렵지 않다. 내가 같이 살고 있는 소중한 이들만 바라보아도 충분하지 않은가.



솔직히 이제는 화가 나기보다는 안쓰럽고 애처롭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그저 자신을 보아 달라는 몸짓임을. 표현에 서투르고 감정에 서투른 어린아이가 내면에 있음을. 그렇지만 지금은 우리 가족이 우선이다. 난 한 가여운 남편의 아내이자, 강인한 엄마이니까. 사십춘기가 와서 그런가 없던 용기도 생기더라. 줄곧 잡고 있던 두려움, 서운함을 툭 놓아버리기로 했다. 조용히 감정적인 거리 두기와 함께. 우리를 지켜 줄 든든한 마음의 벽을 세우면서 말이다.







더 이상

착한 사람 안 할게요

이제부터 까칠하게

살겠습니다








메인사진 출처 : Unsplash




이전 04화 내가 입는 옷이 내가 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