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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nnun Mar 25. 2019

어떤 캠핑카를 선택할 것인가

캠핑카 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집과 자동차, 그 사이 어딘가


지도를 펴 들고 도로를 달리다가 기가 막힌 풍경을 만났다. 잠시 쉬었다 가도 좋을 것 같다. 현지인들만 찾는 시장에 들러 신선한 식재료를 사다가 여유롭게 요리를 한다.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면 여느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은 분위기가 난다. 내가 멈춰 선 곳에 우리 집이 있고, 그 기가 막힌 풍경은 우리 집 뒤뜰이 된다.


여행하는 동안 숙박과 이동 수단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버스, 기차 시간에 쫓길 일도, 숙소를 찾지 못해 마음이 불편할 일도 없다. 운전을 하다가 지도에도 없는 작은 마을이 마음에 들었을 때는 그저 멈춰서 머물다가면 그만이다.


여행을 시작한 지 이제 두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캠핑카는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기에 단연 최고의 여행법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아메리카의 모든 나라들을 육로로 이동할 수 있지는 않지만(딱 한 군데, 콜롬비아와 파나마 사이에 길이 끊어져 있다!) 대부분의 국경을 육로로 통과할 수 있다. 도시와 도시를 메뚜기 뜀 발질하듯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여유롭게 움직인다. 무엇보다 자유! 캠핑카 여행은 자유를 추구하는 여행이자, 우연으로 시작해서 인연으로 마무리되는 즉흥연주 같은 여행이다.


캠핑카 종류를 알아봅시다


여행자의 다양함 만큼이나 수많은 종류의 캠핑카가 있다. 한국에서는 캠핑카, 혹은 카라반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 같은데, 이곳 남미에서도 캠핑카를 칭하는 여러 가지 단어들이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주로 모터홈, 까사 로단떼(굴러가는 집)라는 말을 쓰고, 브라질에서는 트레일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밖에 스페인에서는 카라바나, 북미에서는 알브이(RV, recreational vehicle)라는 말을 주로 쓰는 듯하다. 그리고 캠핑카의 크기나 형태에 따라 다르게 지칭하기도 하니, 캠핑카 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종류와 각 캠핑카의 장단점을 한번 정리해 보면 좋을 것 같다.


RV class A


박스 형태의 덩치카 큰 캠핑카이다. 크기가 크다 보니 가격이 비싸고 부품 등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지만, 냉장고, 세탁기, 전자렌지, 널찍한 주방과 거실, 화장실과 샤워실, 욕조까지 있는 경우도 있다. 어마어마한 수납공간에 집 버금가는 공간이 있으니 풀타임 여행생활자들에게 적합하다. 덩치가 크다 보니 작은 골목이나 복잡한 도시를 운전하기에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물탱크와 하수 탱크가 넉넉하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RV class B

class A 보다 훨씬 작은 경우들이다. 보통은 침대와 작은 주방이 있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없거나 아주 작은 경우가 많다. 규모가 작으니 기동력이 있고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공간이 작은 만큼 불편하기도 하다. 장기 여행보다는 단기 여행에, 가족보다는 커플이나 혼자 여행하는 경우에 적합하다.

샤워실이 없지만 외부 샤워주머니를 활용하면 굿!


RV class C

크기로 보면 class A와 class B의 중간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캠핑카 전용 트럭 구조에 캠핑카 시설을 합체시킨 모양으로 운전석 위쪽으로 공간이 있어 두 사람이 잘 수 있도록 침대가 배치가 되어 있다. 크기는 class A보다 작아 운전하기 좀 더 수월하지만 가격 면에서는 그리 큰 차이가 없고, 갖추고 있는 옵션들도 비슷비슷하다.


이렇게 하나의 차체로 이루어진 캠핑카 종류들이 있는 반면에 차와 집 부분이 분리되는 형태들도 있다. 트레일러, 캠퍼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트래블 트레일러

생활에 필요한 가전제품들을 모두 갖추고 공간도 널찍한 트레일러 형태를 말한다. 트레일러를 자동차에 연결해서 이동하고, 적당한 곳에 주차한 후에 분리해서 자동차를 근거리 이동에 활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팝업 트레일러

트레블 트레일러보다 훨씬 가볍고 규모도 작은 형태이다. 트럭에 연결해서, 혹은 트렁크 부분에 얹어서 이동한다는 점은 같지만 이동할 때 접혀 있던 부분들이 펼쳐져서 집이 된다는 점이 다르다. 이동이 편리한 대신 이동할 때마다 정리하고 접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점이 불편할 수 있겠다.


트럭 캠퍼

주로 트럭의 짐칸 부분에 얹힌 모양을 하고 있다. 크기가 작고 원하면 집과 트럭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실용적이지만 운전석 부분과 집 부분이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공간 활용은 좀 떨어진다.


크게 카테고리를 나눠보자면 이렇지만 실제 여행하면서 정말로 다양한 형태의 캠핑카를 봤다. 옛날 소방차를 개조한 캠핑카, 사륜구동 트럭에 캠핑카를 만들어 합친경우, 작은 벤을 집으로 꾸민 경우, 버튼을 누르면 벽이 옆으로 늘어나 공간이 커지는 최신형 캠핑카 등등


그리고 그 안에는 수많은 형태의 여행가들이 있었다. 혼자 여행하는 말타 출신의 여자, 네 명의 아이들과 두 마리의 반려견을 총동원해서 여행하는 가족, 두 명의 독일인 연구자들, 수공예 악세서리를 팔면서 여행하는 커플, 그리고 아이들을 동반한 많은 가족들...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잡은 벤라이프(vanlife)


우리 가족 여행 동반자, 눈눈버스


우리 캠핑카는 말하자면 class A에 속한다. 지금까지 우루과이와 브라질을 여행하면서 가장 덩치가 큰 축에 속했고, 널찍한 공간 때문에 항상 다른 여행자들과 화합하는 장소가 되곤 했다.

눈눈버스는 10미터 길이에 높이는 3미터에 달하며, 100킬로미터 달리는데 35리터의 휘발유를 먹어치우는 괴물이다.(승용차 세대를 끌고 다니는 것과 거의 맞먹는다) 기름값이 많이 든다는 유일한 단점만 제외하면 지금까지 정말 한치의 고장도 없이 우리와 함께한 든든한 여행 동반자이다.

그녀는 냉장고와 전자렌지, 넓은 싱크대와 샤워실을 갖추고 있고, 여섯 명이 잘 수 있는 침대를 구비하고 있다. 400리터의 물을 채울 수 있으며 600리터의 하수 탱크를 가지고 있다. 보일러와 두 대의 에어컨, 문을 열면 자동으로 펼쳐지는 계단, 그리고 어마어마한 수납공간을 자랑한다. 지붕에는 태양열판이 있어서 자체적으로 전력 수급이 대부분 가능하며, 25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깔끔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는 캠핑버스다.

우리가 이 캠핑버스를 사고자 했을 때 망설였던 부분은 바로 유류비가 많이 든다는 점과 차체가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주차할 공간을 찾는데 좀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그리고 큰 도시는 거의 들어가지 않다 보니 캠핑카 크기가 그리 단점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야외 활동을 할 수 없는 날, 비 오는 날에 캠핑카 안에서도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대단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두 돌도 지나지 않은 막둥이를 위해서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직 하루에 두 번은 낮잠을 자는 막둥이를 방에다 재우고 문을 닫으면 나머지 사람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어린 막둥이가 여행하는 동안 집처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있기를 바랐다.


아무 데나 갈 수는 없어요


캠핑카가 크다 보니 생긴 에피소드가 있긴 하다. 브라질 산지 쪽에서 몇주를 보내고 볼리비아 쪽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때가 2월 말, 아직 여름 끝자락이었기 때문에 날씨가 퍽이나 더웠고, 해변 쪽으로 가서 며칠 더 있다가 더운 날씨가 좀 사그라들면 내륙으로 이동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리하여 해변에서 산지로 그리고 다시 해변으로 지그재그 이동을 하게 된 것이었다.


브라질 지도를 자세히 본 독자는 거의 없겠지만, 우리가 있던 지역은 상파울루 남쪽, 우루과이 국경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브라질 남부 상파울루쯤부터 죽 밑으로 내려오는 산맥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 산맥을 넘어야 해변으로 갈 수 있었더랬다. 산맥을 넘어가는 도로에는 세네 가지 방법이 있었고 우리가 있던 그라마도(Gramado)에서 조금만 위쪽으로 올라가면 산을 곱게 넘어갈 수 있는 고속도로가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머릿속에는 다른 루트가 펼쳐지고 있었으니, 바로 리오 도 라스트로(sierra rio do rastro)라고 불리는 어마어마한 굴곡의 도로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 길이 브라질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길이며, 진정한 모험가라면 가히 그 길 정도는 내려가 봐야 하는 것이라며 남편에게 악마의 말을 속삭인 자가 도대체 누구였던가.

나는 정말로 설마설마했다.

 

그 고속도로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일 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껴있었다. 신이 우리에게 준 마지막 기회라고 느낀 나는 남편에게 저 앞에서 유턴해서 다른 길로 가자고 말했다. 당연히 이런 안갯속에서 내려갈 생각은 안 하겠지, 안심했다. 그런데 웬걸, 안개가 남편의 모험 욕에 불을 지핀 것인지 남편은 그대로 고(go) 했다. 입장하는 순간부터 생전 처음 보는 각도의 내리막 길이 시작되었고, 첫 커브길에 다다라서야 남편의 인상이 심각하게 구겨졌다. 10미터나 되는 캠핑카의 길이 때문에 커브를 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후진과 직진을 수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첫 커브길을 통과했고, 두 번째 커브에서는 끼야아아아악 하는 쇠 긇히는 소리가 들렸다. 암벽에 긁혀 배기 파이프가 빨대처럼 구겨지는 소리였다. 가장 폭이 좁은 커브들을 몇 차례 돌고 한숨을 내 쉴 무렵 뒤쪽에서 와장창 유리가 깨졌다. 화이트보드가 떨어져 오븐 앞 유리를 박살 낸 것이었다.


남편도, 나도, 두 아이들도 입을 벌린 채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무지막지한 내리막길에서 팔 톤이 넘는 무게를 지탱하기에 무리였는지 브레이크에서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우리는 삼십 분에 한번씩 멈춰서 엔진과 브레이크를 호호 식혀가며 그 악마 같은 산길을 겨우 내려가야 했다.


풍경?

물론 끝내준다. 그렇지만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남편은 그 날 이후로 석고대죄했고, 다시는 가족의 안위를 위협하는 어떤 무모한 선택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의 광활하고 평탄한 고속도로 위를 달리기 위해 태어난 이 캠핑버스를 끌고 브라질 급경사 급커브 길을 달리려 한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모험을 좋아하는 여행가들이라면 이렇게 덩치 큰 캠핑카는 맞지 않는 옷과 같다.


자신의 여행 스타일과 여행 구성원의 성격에 따라 캠핑카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캠핑카를 선택하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너무나도 극명하기 때문에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신중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고 아기자기한 실용성을 선택할 것인가
크고 넓은 편리함을 선택할 것인가

캠핑카 여행에 대한 꿈이 생기시는가?


지금까지 알아본 바로는 캠핑의 성지인 미국에서 저렴하고 실속있게 캠핑카를 살 수 있다고 한다. 실로 수많은 여행자들이 미국에서 캠핑카를 구입해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여행을 하고 있다. 미국은 외국인이라고 해도 캠핑카를 구입하고 명의 이전하는 데에 문제가 없고, 서류를 처리하는 속도도 빠르다. 우리 캠핑버스도 미국에 등록되어 있지만 미국 국적이 아닌 우리 이름으로 명의이전을 하고, 새 번호판을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더 저렴한 캠핑카 구입을 원한다면?

https://m.facebook.com/groups/panamtravelers/?ref=group_header&view=group

판아메리칸 트래블 어소시에이션이라는 그룹의 페이스북에는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구하고 질문을 던진다. 이곳에는 대륙 횡단을 마친 여행자들이 캠핑카를 좋은 가격에 판매하는 글들을 자주 올리고 있으니 주목해보는 것이 어떨까.





인스타그램 @nunnun.b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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